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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4 구두
  2. 2007/05/27 행복하신가요

구두

일상 속에서 2013/10/04 14:31
지난 주 아들이 미국에 갔다 왔다.
방송 드라마 (SBS 상속자들) 포스터와 스틸 사진을 찍고
3주일만에 돌아왔다.
가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포토그라퍼라는 자신의 직업에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자기로서는 나름의 긍지를 가진, 전문직업으로 생각했는데
그쪽 사람들에겐 그저 만만한 사진쟁이 취급을 받았던 듯.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했다.
나처럼 늘 긴장하고, 까칠하게만 보이더니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음이 한단계 성숙한 것일까?

일을 계속하려면 성격부터 바꿔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고, 앞으로도 잘 안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노력하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며 빤한 충고를 하니
아빠도 그렇게 못했지 않느냐고 바로 역공이다.
그 역공이 반갑다.
우리 부자, 그동안, 아마도 아들이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3마디 이상 말을 섞지 못했는데....

남들은 아들과 술도 잘 마신다던데
우리 아들, 술 한잔 하자 해도 대부분 거절이었다.
겨우 마주 앉아도 함께 잔을 비운 적이 없다.
나가서 친구들과는 잘도 마시더니
내 앞에선 단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모처럼 말이 섞인 김에
전에 내가 준 책을 읽어봤는지, 슬쩍 한번 더 말을 붙여봤다.
이제 한번 읽어보겠단다.
감동!

그동안 가끔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선물했었다.
읽으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읽어주기를,
혹시라도 읽어본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래왔다.
그러나 역시 전혀 읽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제 한번 읽어보겠단다!

게다가 이번엔 엄마를 제쳐놓고
나에게만 선물을 가져왔다.
외국에 몇번 갔다 와도 늘 엄마를 먼저 챙기더니
돈이 모자랐나, 아님 쇼핑할 시간이 없었나?

페라가모 구두.
꽤 비쌀 텐데....
나갈 때 용돈도 못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냐?

세월은 정말 많은 것을 변하게 하나보다.
내 선물을 부러워 하는 아내를 흘겨보며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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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신가요

일상 속에서 2007/05/27 17:04
요즘엔 참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노래 강사나 웃음 전도사니 행복 전도사니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사는 모습과 살아가야 할 모습을 어찌나 재미있게 풀어내는지,
듣다보면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많은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은
저들은 자기가 한 말 그대로 살고 있을까.
저들은 이 강의실을 나가 혼자 있을때에도 자신이 한 말을 확신할까.
저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그와 더불어 그만큼 행복할까 하는 것이다.

나도 가끔, 가끔은 아니고 어쩌다,
대학생들이나 기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때가 있다.
(몇일전에도 강의를 다녀왔다. 강의료가 생각보다 두둑하더라.)
그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
강의할땐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활기가 넘치지만
직장에서 정작 그렇게 신나게 일하고 있는가.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들은
혹시 나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
나는 내 자신이 갑자기 황금망토를 걸친 현자에서
누더기를 걸친 거지로 변하는것만 같아 당혹스럽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진정 열정에 넘치고 행복한가.
남들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칠까.

그동안 나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은 궁금하다.

본래 우리 세대는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도록 돼있었다.
나보다는 남을, 실리보다는 체면과 명분을 취하도록 배웠다.
내가 하고싶은것 보다는 옳은 것을(무엇이 진정 옳은가!) 해야 했다.
그건 참으로 피곤하고 갑갑한 일이었다.
나는 그런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싶었다.

그런 나에게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전율, 그 자체였다.
그 외침을 듣는 순간 모든 구속이 사라졌다.
절대적인 해방감이 황홀하게 나를 휩쌌다.
나는 니체에 미쳤고, (그가 미쳐서 죽었다는 말에 더욱 미쳤고)
실존주의는 내 모든 사고의 바탕이 되었다.

누구는 자유가
축복이 아닌 저주라지만,
나는 그 '저주'를 만끽했다.

니체와 함께 나는 흔들림이 없었다.
모든 것을 내 기준으로 살았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전혀 내 뜻대로 살고있지 못할 때에도
그 조차 내 의지의 선택이었다.

모든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그리고 수많은 어리석은 시행착오까지도
내 선택의 결과이므로 후회 없다 여겼다.

그런데 요즘,
내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낀다.
아니, 돌이켜보면
그동안도 자유롭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자유라고 생각한건 착각이었던가.
나의 확신, 나의 행복은 기만이었던가.
혹시 남들은 내가 그러함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닌가.

저 현란한 행복의 전파자들을 볼때마다
나는 궁금해진다.
저들은 보이는 것 만큼 행복한가.
나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나는 행복한가.

그리고,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은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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