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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술이란.......

한담 2006/09/04 21:51
내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하긴 40년 넘게 만나온 고향 친구들도
날 보면 먼저 술부터 권하는 판이니...
(그들은 내가 취해야 재미있고, 자기들보다 2,3배는 마셔야 내가 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나는
술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다.
술은 대화를 위한 수단 일뿐이다.

내 말이 남에게 흉기가 되지 않도록,
남의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무디게 하는 수단.

내가 술과 처음으로 만난 것은
고교 1년때, 아버님 생신날 이었다.
어려운 살림중에도 아버님은
생신때 마다 늘 친구분들을 초대하셨다.
어머님 고생하신다고 올해는 안하겠다고 하시고도
정작 생신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렀다.
어머님은 그런 아버님에게 마구 화를 내면서도
(말로는 화를 내셨지만 표정은 오히려 신나 보였다.
그 때의 어머님은 정말 귀여우셨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장만했다.

손님들은 가벼운 선물들을 하나씩 가져오셨는데
그 날은 누군가 캔맥주를 한박스 가져왔다.
지금은 맥주가 별것 아니지만
당시는 고급 술이었고
더구나 캔맥주는 첨단상품이었다.

나는 캔맥주에 호기심을 느꼈고
마침 불콰한 얼굴로 화장실에 가시려던 아버님께 불쑥.
"저, 이거 하나 먹어도 돼요?" 하고 물었다.

이미 기분 좋을만큼 취기가 오른 아버님은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시더니
"그래, 마셔라.
다만 네가 술을 먹어야지 술이 너를 먹어선 안된다"
고 말씀하셨다.
이로서, 나는 음주 인증을 받았다.
아버님의 말씀은 내 가슴에 각인됐다.

음주 허락은 받았지만 술 마실 기회는 많지 않았다.
입시 준비에 바쁘기도 했지만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할때에도
굳이 술을 찾지는 않았다.

디학에 들어가서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는 토론을 많이 했는데
토론을 하다보면 싸움판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본질이 아닌, 상대방의 말투나 표현방법이 늘 문제였다.
싸움이 벌어지면 술로서 화해를 했고,
이런 일이 되풀이 되다 보니
아예 술부터 먹고 토론을 하기로 했다.

취하다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주의! 안그런 사람도 있다)
상대방이 뭐라고 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내가 좀 심한 말을 해도 취해서 그러거니 한다.
여간 편리한게 아니었다.
나중에는 술 먹기 전 구호까지 외쳤다.
"날카로운 우리의 이성과 감성을
무디게 하기 위하여"

그러나 이러한 음주 습관이 오래되다 보니
술 없인 대화가 아예 안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술을 안 마시고 누구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표정부터 말투까지 굳어버린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일들이
어디 술 마실때 일어나던가.
내 현실적 삶을 좌우할(도저히 인정하고싶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나는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
원칙밖에 모르는 반골로 오해(?)됐다.
(엄청 손해나는 장사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직도 나에게 젊음과 순수함이 조금이라도 남아았다면
그건 술 덕분이다.
내 사춘기와 청년기가 알콜에 담가져
부패하지 않고 가슴에 남은 덕분이다.

사람은 모두가 몇개의 얼굴을 가지고 산다.
나도 그렇다.
그 중 어떤 게 내 본 모습일까.
술을 마실때?  안마실때?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혼자 있을 때
사람은 맨 얼굴의 자신을 만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 때의 모습은
이제 오히려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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