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러서 간 북한산

일상 속에서 2013/10/14 14:26
지난 주말
한 주 내내 벼르다 북한산에 가다.
예전엔 주말이면 으레 산에 가는 걸로 알았는데
재취업 이후엔 별러야만 산에 간다.
특히 지난 주에는
운동도 하루밖에 하지 못한채 1주 내내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마치 산에나 가야 술에서 헤어날 수 있다는 듯
주말엔 꼭 산에 가야지, 가야지 했다.

왜 술을 줄이겠다고 결심만 하면
오냐, 그래봐라는 듯이 술 마실일이 줄 잇는 것일까?
하느님 심보, 참으로 고약하시다.

설악산엔 이미 단풍이 한창이라는데
혹여 이곳도 그럴까
구파발역부터 등산객이 북적인다.
그러나 단풍은 아직 멀었고
계곡의 물도 거의 말라 볼품이 없다.

그래도 생각 밖으로 발걸음은 가볍다.
올 때는 억지로, 가야만 하기 때문에 가는 것 처럼 왔으나
일단 산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더냐 싶게 마음이 편안하다.
북한산도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오랜만의 산행이니 욕심을 내지 않겠다 했으나
위문에서 만경대로,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을 거쳐 결국 대남문까지 갔다.
문수사에서 부처님까지 뵙고 하산하다.

예상밖의 좋은 컨디션에
내리막길도 쿵, 쿵
혈기방장하게 산을 내려오다.
그러다보니
늘 쉬던 곳도 그냥 지나쳤다.
이러면 안되는데....
쉴땐 쉬어야 하는데....

결국 탈이 났다.
갑자기 무릎이 아파 걸을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자주 자주 쉬었으나
이미 탈이 난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뭐랬느냐?
달도 차면 기운다 했느니.
무엇이든 한계를 넘으면 안된다.
한계 직전까지 가면 강해지지만
한계를 넘으면 무너진다.

이날 밤새 앓았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
신음 소리가 절로 났다.
아내는 "에구, 미련퉁이!"
시끄럽다 돌아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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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사흘?

한담 2013/09/23 10:14

추석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니
휴가 시작 전의 회식이 화제다.
그날 점심때부터 술 자리가 시작됐는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고
결국 늘 어울리는 우리 셋 중 한명이 집에 가지 못했다고.
그는 길거리에 누워 잠을 자다 경찰 신세까지 졌다며
왜 날 혼자 두고 갔느냐고 항의(?)를 한다.
걱정이나 위로보다 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그러고 보니 연휴 중에도 술을 많이 마셨구나.
나도 그날 술자리 이후 술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술을 끊으려고 하면 꼭 그럴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연휴 중 아내와 함께 영화(관상)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전화벨이 울린다.
언뜻 보니 홍제동 친구.
보나마나 또 술 마시자는 소리겠지.
일부러 안받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보니 무려 7,8통이 와 있다.
슬쩍 아내 표정을 보니
아내도 술 한잔이 싫지는 않은 눈치.

전화를 했다.
전어회 한번 먹잔다.
서울과 일산의 중간지점인 화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횟집에서 전어를 회로 먹고 구워서 먹고...
어쩌다 보니 순식간에 소주 3병이 빈다.
그 후로 몇병을 더 마셨던가.
그리고 2차를 갔는데,
그 이후론 기억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또 후회.
술좀 줄이자고 작정한 것이 불과 사흘이 안됐는데,
그새 또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말았구나.
그래도 내가 먼저 마시자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영화 '관상'은 지금 관객 700만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단다.
재미있는 영화.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짜 얽어
우습되 그저 웃을 수는 없는, 묘한 맛을 준다.

이 영화를 두고 또 말들이 많다.
이 영화, 별로 대단치도 않은데 웬 흥행이냐는 것.

그래, 대단치는 않더라.
그러나 내 눈엔
설국열차보다는 훨씬 재밌고 의미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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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관상, ,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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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그리고 나이 들어 간다는 것

한담 2007/04/19 21:08
교수들이 어디에 가서 강연할 일이 있으면
젊은 시절엔 아는 것 모르는 것 모두 적어 가 말한단다
조금 나이가 들면 기억나는 것만 이야기 하며
아주 나이가 들면 생각 나는대로 말하고
그 단계를 지나면 말하고 난뒤 생각한다고.

이 말을 전해준 이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건망증이 심해진다며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우스개로 이 말을 꺼냈지만
나는 이 글에서 나이 듦의 전혀 상반된 두 모습을 본다.

하나는,
나이가 들면서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엔 무슨 일을 하든 준비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
점점 게으르고 무책임해져
나중엔 사전 준비는 커녕 나오는대로 말하고
끝내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된다.

또 하나는,
나이가 들면 사고가 완숙해지고 매사 초연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중엔 그저 생각나는대로만 말해도 지혜가 넘치며
모든 일에 욕심과 집착이 사라져
종국엔 우선 말하고 후에 생각해도 순리에 어긋남이 없게 된다.

이같은 두가지 모습은
어쩌면 같은 사람을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석을 어떻게 하든
내 경우 술에 관한 한은 교수들의 말 그대로인 것 같다.

학창시절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술 취한 개....취하면 개?


할말이 너무 많아 아는것 모르는것 다 떠들었다.
사회에 나와 선배들과 술을 마시면서부터는
긴장해서 아는 것만 이야기 했고,
(일단 말한 것은 양보를 안해 싸움도 많이 했다)
더 나이 들어 후배들과 마시면서는
느슨해져 생각나는 대로 말했으며
이젠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겨
누구와 마셔도 다음 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곰곰 생각해야 한다.
혹시 실수나 하지 않았는지 불안에 떨면서.

(요즘엔 많이 마시지 않아도
술만 마시면 다음날 우울해진다.
습관적으로 실수했나 불안해지는 내가 가련해서.)

시인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이란 그의 잡문에서
술 마시는데에도 격이 있다며 모두 18단계의 분류를 헤놓았다.

전혀 술을 안마시는 9급에서 시작해
취하기를 민망해 하는 7급,
돈이 아까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6급,
이익이 있을때에만 남에게 술을 사는 5급을 지나
술의 진경을 배우는 주졸(酒卒)이 돼야 겨우 1급이다.

유단자가 되려면
술을 취미로 맛보는 애주가쯤은 돼야 한다.
이때가 술꾼이랄 수 있는 주도(酒徒)로서 1단,
폭주를 하는 주광(酒狂)은 4단이고
오래도록 술을 마시며 주도 삼매에 드는 주선(酒仙)은 5단,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그저 술을 즐기는 주성(酒聖)은 7단이고
술을 눈으로만 즐길뿐 이제 마실수 없게 된 사람은 주종(酒宗)으로서 8단,
술로 말미암아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면 열반주, 최고수인 9단이란다.

나는 어디쯤 와 있는가.
4단은 넘은 것 같고
5단과 7단 사이쯤?

주선 아니면 주성이라니 듣기는 좋다.
그러나 말이 좋아 주선, 주성이지
깨놓고 이야기 하면
이제 슬슬 술을 못견디는 단계라는 것 아닌가.
이제 조만간 주종이 될 것이고
결국 열반주를 들어야 하겠지.

이미 술을 보기만 할뿐 마실 수 없는 사람을
8단이라며 주종으로 치켜세우는 시인의 구라가
참으로 우습고 한편 가엽다.
그 자신 이제 술을 못마시는 신세가 되어
위안이 필요했던 것일까.

나이 들어 삶의 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달리 보면 욕심이 사라져 만사에 초연해지는 것일 수 있다.
조금 뻔뻔해지는 것도
예쁘게 보면 다른 종류의 지혜일 수 있다.
삶이란 그렇듯 오묘한 것 아니던가.

술도 그렇다.
나이 들어 더 이상 마시지 못한다고
억지로 말을 만들어 자신을 위로할 필요 없다.

나는 더 나이가 들어도
결코 8단이 되지는 않겠다.
마실 수 없다면 보지도 않는다.
왜 마실 수도 없는 술 앞에서
침을 흘리며 앉아 있겠는가.
(더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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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취미성

일상 속에서 2006/07/18 20:33

나는 참 대단하다.
아무리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도
집은 귀신같이 찾아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필름 끊겨도 집 찾아 가는 것?
그건 사실 웬만한 사람은 다 하는 것이다.

어제였다.
제주도 세미나에 갔다.
세미나 가서 그렇게 열심히 세미나 하는 거
나, 생전 처음 봤다.
무려 5시간 넘게 거품 물어가며 토론을 벌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어진 술자리도 뜨거웠다.
소주가 몇순배 도나 했더니
곧장 폭탄주로 바뀌었다.
2차, 3차서도 계속 폭탄주였다.

얼마나 마셨을까.
마지막에 4명이 남았던 것 같다.
그 후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 내 방이었다.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산 넘고 바다 건너 일산 우리 집으로 간 게 아니고
(그건 누구나 다 한다)
617호실.
난생 처음 간 숙소.
바로 그 곳에
난 정확하게 홀로 찾아간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워까지?

이만 하면 나,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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