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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한담 2014/03/17 17:30
오랫동안 이발을 하지 못했다.
회사 주변에 이발소를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쩌다 한 이발소 표지를 보고 지하로 따라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 도망나오기도 했다.

지하 계단 막바지에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꼭 화장실 처럼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열어보니 딱 화장실 크기의 이발소다.
나이 든 아주머니가 졸다 깨어 맞는데
도저히 이발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 마냥
허겁지겁 돌아 나왔다.

주변의 먹자 골목에서도 이발소 표지를 하나 발견했는데
왜 이러냐? 이곳도 입구가 화장실 문 같다.
흔한 게 미용실인데, 여긴 어찌된 것일까?

오늘은 인터넷으로 주변의 이발소를 뒤져
멀리 안국동 사거리까지 갔다.
겉보기에 제법 번듯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갑자기 30년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다.

큼직한 낡은 가죽의자에 선풍기, 세숫대야, 그리고 싸구려 벽 그림.
백설공주의 일곱 난장이 처럼 생긴 두 노인이
마치 먹이를 발견한 거미 처럼 달려드는데,
나는 거미줄에 걸린 나비 처럼
반항도 못하고 속절없이 의자에 가 앉고 말았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 노인이
물이 줄줄 흐르도록 머리에 물을 뿌려 대더니
2대 8로 썩~ 가리마를 한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위를 들이댄다.

첫 가위에 머리칼 한 웅큼이 뭉텅 잘려 나간다.
두 달 전 부터 머리를 조금씩 길러왔는데.....
도로 옛날로 가는구나!
머리가 다시 자랄 때까지
앞으로 당분간 아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

만사 체념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러고 보니, 처음 손을 덜덜 떨던 노인의 가위질이
여간 능숙한 게 아니다.
더구나 기계를 전혀 쓰지 않는게 아닌가.
이런 대접은 또 처음 받아보네?

"손님도 머리 더 이상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것어"
스스럼 없이 풀어놓는 이야기도 제법 정겹다.

"나는 요즘 검정콩을 볶아서 먹는데
두 달만에 머리가 이만큼이나 자랐어"

자라긴, 내가 보기엔 그저 반들반들한데....

"나 때문이 아니고, 아들 녀석이 나를 닮아서 말이야.
효과 있으면 아들 녀석에게 먹이려고.
내가 자식을 위해 희생 시험물이 되는 거지"

효심도, 아니, 자식 사랑도 극진하다.
주인장 이야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머리 자르기를 마치고, 노인이 면도칼을 들고 오는데....
바로 그 칼이다!
두꺼운 혁대에 썩썩 갈아 쓰던 옛날 그 면도칼.
면도를 하다 이 자가 갑자기 그냥 내 목을 그어버리면 어쩌지?
공포에 떨던 바로 그 칼.

면도를 사양하고, 머리 감는 것도 사양하고
대충 잘린 머리털을 털고 일어나
때 묻은 거울 앞에 섰다.
 
이게 누구야?

못 보던 사내 하나가 서 있다.
새마을 지도자?
늙은 깍두기?

나, 이제 어쩐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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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충정로 2014/03/24 14:29 PERMALINKMODIFY/DELETE REPLY

    ㅎㅎ
    완장하나 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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