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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6 밤배 (5)

밤배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09/06 09:08
대학 2년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만리포로 바캉스를 갔다.
당시는 만리포가 별로 개발이 안돼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특히 멀리 도시에서 오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바로 '킹카' 였다.
이른바 명문대 출신에 나를 빼곤 모두 인물도 좋았고
(정말 알랭들롱 뺨치게 생긴 놈도 있었다)
말발이라면 두째 가기 서러운 놈도 있었다.
또 내가 누구인가.
장작을 쌓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잼보리 가서 익힌 각종 게임과 노래를 풀어놓으면
온 해변이 우리 독무대였다.

그날도 밤이 되자 우리는
민박집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시작했다.
떠들석한 소리와 타오르는 불빛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잔치판은 커져만 갔다.
그 때,
"아니, 이럴 수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우리 과 놈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평소 말 한마디 없이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있다가
강의가 끝나면 소리 없이 사라져
도서관에 쳐박혀 사는 그 놈.
도시락도 싸와서 혼자 먹는 놈.
대학생활의 낭만과는 담을 쌓은 놈.
바로 그 놈이,
글쎄 그 놈이
옆에 턱하니 여자를 끼고
모닥불빛을 찾아 온 것이다.

경악
충격
부러움
그리고 자존심 상함.

논다 하는 우리도 변변한 여자친구 하나 없는데,
언감생심,
여친과의 외박여행은 꿈도 못꿔봤는데
그런데 그 놈이,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놈이
우리 뒤통수를 갈긴 것이다.

나도 놀랐지만 그도 놀랐던 것 같다.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급히 시선을 피한채 발길을 돌리려는 그를
손짓을 해가며 불러세웠다.

우리도 못해본 짓을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밀회를 들켜 어쩔줄 모르는 놈을
억지로 게임에 동참시켰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놈과 놈의 여인을 망신시킬 셈이었다.
집요하게 놈의 실수를 끌어내
드디어 사람들 앞에 세웠다.
무슨 벌칙을 줄까.
어떤 게 제일 고약할까.

그런데 막상 벌을 주려니
갑자기 그가 불쌍해졌다.
어깨를 잔뜩 움추린채 얼굴색까지 변한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여인을 보호하려 애 썼다.
그 모습이 너무 애절해서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그래 우리가 못났지, 니가 무슨 죄가 있냐.)
나는 그냥 둘이서 손잡고
노래나 하나 하라고 했다.
그 때 그들이 부른 노래가 바로 이 밤배다.

이 노래는 그들에게 참 잘 어울렸다.
소곤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둥지속 다정한 한쌍의 새와 같았다.

그들은 결국 결혼했다.
아들 낳고 딸 낳고 지금도 잘 산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 노래가 생각났을까.
모르겠다.
그냥 막 생각이 난다.
누군가가 마구 그립다.

최근 나는 만리포에 두번이나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파아란 하늘에 무심한 파도만
슬그머니 왔다가
나를 보곤 "철썩"
뒤돌아 말 없이 가더라.

* 참, 바캉스 하면 꼭 생각나는 노래.
해변으로 가요.
이 노래만 들으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울렁울렁 한다.
이 노래만 들으면 나는 아직도 1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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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창현 2006/09/06 16:59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도 누군가가 그립네요.

    일이 잘 안풀리니까 더욱더... ㅋㅋ

  2. 허운주 2006/09/07 14:4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누군가가 k로 시작되는? ㅋㅋ

  3. 송애교 2006/09/08 04:4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도 K가 막 그립네요 ㅋㅋㅋ
    아~그립당~~~

  4. 송애교 2006/09/08 04:5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부국장님처럼 노래마다 사연과 추억이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듯 합니다.
    여태 부국장님이 노래방에서 부르던 노래를
    그저 그날 땡기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봅니당~
    이렇게 사연이 많은 노래들이였으니..
    그러니 아무생각없이 제가 부른
    트로트 뽕짝이 얼마나 충격이셨겠어요? ㅋㅋ
    제 또래들이나 티비서 보면 젊은 연예인들도
    분위기 UP차원서 트로트 뽕짝을 얼마나 많이 부르는데요~
    그러니깐 너무 놀라지 마세요~~
    요즘은 요런 노래도 인기랍니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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