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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가 뭘 잘못했는데?

한담 2016/06/29 10:52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화제다.
나도 아내가 재밌다며 보라고 해서 딱 한번, 아마 재방 한편인가 두편을 봤다.
참 재미 있더라.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아 확실한 내용은 모르지만
제목으로 보아 아마도 늙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것 같다.

그런데 남들이 재미있어 하는 이유가 나와는 영 다르다.
나에겐 극중 꼴통 할배 신구가 너무 멋진데
남들은, 특히 여자들은 신구를 욕하는 재미로 이 드라마를 본 것 같다.

신구, 그는 보수적이고 귄위적인 구세대 가장이다.
여자와 자식들이 점령해버린 이 세상에서
아직도 홀로 가족들 위에 군림한다.
정년퇴직으로 처지가 곤란해지긴 했지만
그는 아직도 당당하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파트의 젊은 처자 입주민이
이걸 들어달라, 저걸 들어달라, 왜 제대로 못 들어주느냐 타박을 하자
어디서 갑질이야?
니 아버지한테도 이럴래?
버럭 눈을 까뒤집고 일갈한다.
동료들이 왜 이러냐고, 이러다 잘리고 싶으냐고 하자
모자를 내팽개치고 스스로 그만 둔다.

언제 목이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회사원은 말고라도
원칙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그 잘난 법조인, 정치인 중에서도
이 만큼 당당한 사람 본적 있더냐?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시대 착오적인 또라이로 취급한다.
비난과 조롱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자기 남편이 모두 악당으로 보이는가?
신구를 보면  "꼭 늬 아빠 같다" 흉보기 바쁘다.

사실 그는 요즘 위기다.
소심한 복수만 꿈꿀뿐 언감생심 맞짱 뜰 엄두도 못내던 아내가
마침내 이혼의 결단을 내리고 집을 나갔다.
큰일 났다.

사실 그에게 조금 문제가 있기는 하다.
젊은 시절, 유산기가 있어 병원에 가겠다는 아내에게
 "엄살 말라" 호통을 쳤는가 하면
하혈을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아내에게
 "일어나, 밥 해" 명령을 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가 그렇게 이기적이고 독한 사람이기만 한 걸까?
자기 일엔 수전노처럼 돈을 아끼면서도
부모님 제사 제수 마련엔 돈 아까운줄 모르는 효자다.
신혼시절엔 아내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다만 그동안 사는 게 그리 녹녹치 않았던 게다.
힘들게 살다보니 성정이 메말랐던 게다.
말을 못해 그렇지, 속까지야 어디 그렇겠는가.

경비원을 때려치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안다.
자리가 없자 그는 앞에 앉아있는 여고생에게
"일어나" 다짜고짜 명령한다.
여고생이 뜨악하게 쳐다보자
 "뭘봐?" 일언지하에 기를 죽인다.
너무도 황당한 사태에 허둥거리며 여고생이 일어서자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비워준 자리에 털석 앉는다.
그 당당하고도 뻔뻔한 모습에 나는 자지러졌다.
감히 나는 꿈도 꾸지 못할 짓을
그는 손 한번 털듯이 간단히 해치우는구나!

사실 어른을 보고도 멀뚱멀뚱,
자리가 나면 양보는 커녕 제 먼저 달려가 독차지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야 양보를 해줘도 사양하겠지만
사양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젊은이들이 속으로 얼마나 괘씸하던가?
어른을 보면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야지.
그러지 않아도 성질나는 판에....
그가 이번에 유독 꼰대스러운 짓을 한 것은
스스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여고생에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소녀가 팔이 하나 없었다는 사실은
버스가 떠난 뒤 버스를 내려버린 그녀를 창밖을 통해 보고 나서다.
나중에야 사정을 알고 망연자실한 그.
내가 지금 뭔 짓을 한 것인가....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났다.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지만
이제 와 누구에게 어떻게 사과할 것인가?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들.
그러나 어쩌랴.
그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날 보고 독하다, 꼰대다, 별 욕을 다 해도
그저 견딜 수 밖에.

그런 게 우리 인생 아닐까?
하고싶은 일, 해야만 하는 말이 있어도
어쩌다 보면 기회를 잃고 속으로만 앓는 것이...
그도 아내에게 왜 미안하지 않겠는가?
왜 잘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이 내 심사....

남들은 그저 그가 웃기는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그가 너무 블쌍했다.

그는 요즘 반성 중이다.
그도 바뀔 건 바뀌어야 하겠지만
죄인 취급은 말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가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남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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