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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에 가다

일상 속에서 2006/09/11 13:08

"일상의 사소함에 지치지 말고 오히려 즐기라"
가까운 사람들의 충고에 따라
나 자신을 바꿔보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평소의 게으름을 털고 가볍게 요기를 한 뒤 계룡산으로 향했다.
대충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 알아두긴 했지만
정작 찾으려니 1시간 반이나 헤매야 했다.
몇번이나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왕 나선 길, 마음을 다잡았다.

버스를 타고 보니 정작 동학사까지는 겨우 40분.
산에 오르기전 배를 든든히 해두려 식당을 찾았다.
아줌마들이 나와서 계곡쪽으로 안내를 하는데,
혼자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일부러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산채비빔밥을 시켜 뚝딱 먹어치웠다.

산으로 오르는 길엔 늙으나 젊으나 모두 쌍쌍이다.
예전엔 '호랑이는 몰려 다니지 않는다'며
혼자 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이젠 왠지 서먹하다.
저 사람은 그 나이에 가족도 친구도 없나
하다못해 숨겨둔 애인도 없나
모두들 한심하다고 수근거리는 것 같아
외면하듯 서둘러 산에 오른다.

사실 내가 누군지 신경쓰는 사람이 하난들 있으랴.
다른 사람에게 나는
누군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나 자신에게
풀석,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산에 오르니 꽤 땀이 났다.
은선폭포까지 오른 뒤 내친김에 관음봉까지 갈까 하다가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산책을 즐기러 온 것이지
정상 정복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온 것이 아니다.

하산길에 다시 점심을 먹던 식당에 들렀다.

관음봉


이번엔 계곡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와 빈대떡을 주문했다.
정말 모처럼 혼자 마시는 술이다.
빈대떡은 형편없었지만
술은 달았다.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이지 않는다.

제법 얼큰한 기분으로
잘 가꿔진 절 길을 간다.
경내를 거의 빠져나왔을 때 전화가 왔다.
아내다.

요즘 아내와는 냉전중이다.
몇일 전 서울을 갔던게 발단이다.
모처럼 올라가니 할일이 많았다.
저녁엔 술 약속도 있었다.
집에 들를 시간이 빠듯했으나
아내를 생각해 약간 무리를 해서 집에 갔다.
그런데 별로 반기는 것 같지가 않다.
내심 그게 섭섭했던 모양이다.

그날 12시가 넘어 술에 취한채 대전에 돌아왔는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잘 들어 왔는지 궁금해서였겠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볼멘 소리가 나왔다.
몇마디 하지도 않고
전화는 뭣하러 했느냐며 일방적으로 끊었다.
얼마나 머쓱했을까.

다음날 조금 후회가 됐지만
이왕 강공을 한 이상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자기도 전화를 안하네?
괘씸했다.
서로 연락을 하지않고 버티기가 시작됐다.
하루
이틀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런데,
"나한테 전화했어요?"
"안했는데"
"에이, 해놓고"
"안했다니까"
"어제밤 12시반에 전화했는데 뭘~"
아차, 어제 술을 먹고 나도 모르게 집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아내는 자느라고 못받았으나 전화번호가 찍혔던 것이다.
갑자기 얼굴이 벌개졌다.
진짜 짜증나네.
"나도 몰라" 하고 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연락이 끊겼다.

"왜?"
나는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거기 어디예요?"
아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밝았다.
"동-학-사"
나는 무심한듯, 그러나 분명하게 동학사라고 말했다.
놀랐을 거다.
"동학사? 혼자?"
아니나 다를까. 눈이 휘둥굴해진 아내의 모습이 역력하다.
"당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 나는 혼자 이런데도 못오나?"
".................."
아내가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
클났다. 이제 진짜 전쟁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내가 뭘?
나는 죄가 없다.

일부러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다.
돌아오는 길에 까르푸에 들렀다.
먹고싶은 것을 잔뜩 샀다.
집에서 시원하게 샤워를 한 다음
TV와 컴퓨터를 켠다.
음~좋다.
내일 아침엔 김치찌개를 맛있게 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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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other 공방녀 2006/09/13 19:33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그래, 나는 혼자 이런데도 못오나?"
    어떤 말투인지 눈에 선하네요.^^
    아직도 사랑싸움 하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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