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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4 구두

구두

일상 속에서 2013/10/04 14:31
지난 주 아들이 미국에 갔다 왔다.
방송 드라마 (SBS 상속자들) 포스터와 스틸 사진을 찍고
3주일만에 돌아왔다.
가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다.
무엇보다 포토그라퍼라는 자신의 직업에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자기로서는 나름의 긍지를 가진, 전문직업으로 생각했는데
그쪽 사람들에겐 그저 만만한 사진쟁이 취급을 받았던 듯.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나 표정은 담담했다.
나처럼 늘 긴장하고, 까칠하게만 보이더니
오히려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음이 한단계 성숙한 것일까?

일을 계속하려면 성격부터 바꿔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고, 앞으로도 잘 안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노력하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며 빤한 충고를 하니
아빠도 그렇게 못했지 않느냐고 바로 역공이다.
그 역공이 반갑다.
우리 부자, 그동안, 아마도 아들이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3마디 이상 말을 섞지 못했는데....

남들은 아들과 술도 잘 마신다던데
우리 아들, 술 한잔 하자 해도 대부분 거절이었다.
겨우 마주 앉아도 함께 잔을 비운 적이 없다.
나가서 친구들과는 잘도 마시더니
내 앞에선 단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속 깊은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모처럼 말이 섞인 김에
전에 내가 준 책을 읽어봤는지, 슬쩍 한번 더 말을 붙여봤다.
이제 한번 읽어보겠단다.
감동!

그동안 가끔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선물했었다.
읽으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읽어주기를,
혹시라도 읽어본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래왔다.
그러나 역시 전혀 읽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제 한번 읽어보겠단다!

게다가 이번엔 엄마를 제쳐놓고
나에게만 선물을 가져왔다.
외국에 몇번 갔다 와도 늘 엄마를 먼저 챙기더니
돈이 모자랐나, 아님 쇼핑할 시간이 없었나?

페라가모 구두.
꽤 비쌀 텐데....
나갈 때 용돈도 못줬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냐?

세월은 정말 많은 것을 변하게 하나보다.
내 선물을 부러워 하는 아내를 흘겨보며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들이 마음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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