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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19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시사 2013/12/19 12:18
한 대학생이 캠퍼스 담벼락에 붙인 대자보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이 대자보는
본래 철도 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에 분노해 작성한 것이다.
그는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도,
이를 비난하며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국회의원을 여권이 멋대로 제명처분하려 해도
오불관언, 아무런 관심이 없는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당신들, 정말 아무렇지도 않느냐고 묻고 있다.

정말 사람들, 대학생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부 여당의 시대착오,  막가파식 행태에도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관심이 없었다.
노조원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야당과 시민단체가 일어서자고 외쳐도
그들은 '그래서 뭘?  다 똑같은 놈들'이란 듯,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이 대자보에는 "안녕치 못하다"는 응답이 즉각 왔다.  
그러더니, 안녕치 못한 사연들의 대자보가
대학가를 넘고, 고교를 넘고, 정치권, 급기야 사회 전반에까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이에 놀란 여권과 보수 언론이 개입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
사회가 온통 안녕하다, 못하다로 난리다.

이 대자보의 무엇이 
누가 뭐래도 요지부동이던, 그처럼 무관심하던 시민들의 잠을 깨웠을까?
아마도 '안녕들 하시냐'는 평범하고도 정중한,
그러나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사말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안녕하시냐'는 말은
조선조 임진왜란 때 생긴 것이다.
7년에 걸친 전쟁으로 백성들의 삶은 말이 아니었다.
총 맞아 죽고, 칼 맞아 죽고, 굶어죽고, 얼어죽고
날마다 누군가 죽어나가던 현실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밤새 무사했는지, 끼니는 제대로 챙겼는지였을 것이다.
이것이 '안녕하십니까', 또는 '식사 하셨습니까'란 인사말로 굳어진 것이다.

지금은 굶어죽거나 총칼에 맞아 죽을 염려가 별로 없는 시대다.
그런데도 이 말들은 아직도 의례적 인사말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가 정색을 하고 '안녕들 하시냐'고 묻자
사람들은 '안녕'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질문자의 의도를 즉각적으로 깨닫고 공감한 것 같다.
그는 안녕들 하시냐는 말로
"나라가 이 꼴인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이 상황에 발 뻗고 잠이 오더냐"는
까칠한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라고 직접 다그치거나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꾸짖지 않기에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안의 숨은 정의감과 쉽게 마주친 것 같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낀 것 같다.

나는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을 때 역사의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만큼 박근혜 정부에 애초부터 기대도 안했다.
아니다 다를까, 1년도 안된 지금, 나라가 시끄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그와 그를 둘러싼 권력들의 모습이 얼마나 뻔뻔한지,
실로 후안무치의 극치다.
사람이 하두 기가 막히면 할 말도 잃는 법.
나는 아예 귀 막고 입 막고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도 지금 그의 물음은
"그래서 살만 하냐?"
은근한 압력으로 다가온다.

박 정권에 미련이 없으면서도
사실 나는 일말의 기대를 놓지 못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출현도 역사의 진보라면, 박근혜 정부의 소명은 무엇일까?
박정희에 대한 환상의 불식이라고 믿었다.
박정희에겐 분명히 역사의 공과가 있다.
그러나 공은 널리 승인됐지만 과는 제대로 조명되지도 않았다.
민주정부 때 이를 제대로 정리해야 했지만
권력유지에 불안을 느꼈던, 혹은 모질지 못했던 김대중 노무현은
관용과 화해라는 명분으로 흐지부지 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박정희는 더욱 과장, 미화되었고
심지어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까지 추앙되고 있다.
이는 민주화의 진전에 묘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소명이라 생각했다.

길은 두 가지.
내가 예상한 바, 박근혜의 무능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박정희 신화가 더불어 깨지는 것.
또 하나는 내가 희망하는 바,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잘못을 바로잡아 아버지를 역사와 화해시키면서 제2 도약의 길을 여는 것.
두번째가 물론 바람직 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희망보다는 예상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요즘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는 소리가 많다.
중국이 경제 초강국으로 새로이 부상하면서
아시아 패권을 두고 미국- 일본과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외교는 물론 군사각축마저 심상치 않다.
이런 판에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기대를 받아온 2인자 장성택을 느닷없이 총살,
세계를 경악시키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행보를 걷고 있다.
남쪽은 종북이네 아니네 갈갈이 찢어져 싸움질이고
경제마저 언제 부동산 뇌관이 터져 파탄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진보 학자뿐 아니라 보수 논객들조차
또 다시 나라가 망국의 조선, 구한국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제는 별  뜻없는, 그저 인사말에 불과하던 안녕하시냐는 물음이
너도 양심이 있느냐, 네 마음이 편하냐는 물음을 넘어
생존과 끼니 여부를 묻는, 본래의 의미로 되돌아갈까 염려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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