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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02 대전 블루스

대전 블루스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12/02 13:08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 말은 왠지 순수한 작별인사로 들리지 않는다.
원망, 미련, 불만 등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물씬하다,
마치 가시는 님 앞에 뿌려진 진달래꽃처럼.
심지어 나는 갈테니 너 혼자, 혹은
너네들끼리 잘해보라는 식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노래 '대전 블루스'를 듣다보면.
그러한 원망은 금새 애절함으로 바뀐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진다.
이별의 한과 슬품이 견딜수 없이 밀려든다.

이 노래의 가사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보슬비가 내리는 새벽 대전역 플랫폼에서
눈물로 이별하는 남녀를 보고
음반사 직원이 가사를 썼다고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곡도 가사도 너무 애절하다.

예전에 한동안 이 노래를 많이 불렀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잊어버렸는데
요즘 다시 이 노래가 몹시 내 마음을 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내가 다시 대전에 왔기 때문인가.

돌아온 대전역 광장엔
예전에 볼 수 없던 노래비 하나가 섰다.
'대전 블루스 노래비'.
노래의 무대가 대전역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대전역은 나에게도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의 대전역 모습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내가 여섯, 아니 일곱살 때 였던가.
부모님을 따라 처음 대전에 왔었다.
서울 외갓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온 것.
산골 꼬마에게 처음 와 본 도회지는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시끄럽기는 또 왜 이렇게 시끄럽던지.
나도 절로 마음이 바쁘고 들떠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 기차는 증기가관차.
끝없이 이어진 시커먼 무쇠 덩어리는 그자체가 '괴물'이었다.
그 거대한 괴물이 이빨 사이로 칙, 치익~ 뜨거운 김을 내뿜고
머리에선 하늘을 뒤덮을 듯 구름같은 연기를 쏟아내면서
꽥, 꽤액~ 귓청이 찢어질듯 소리를 지르면
나는 그만 오금이 저려 당장 오줌을 쌀 것 같았다.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나에게 여기서 꼼짝말고 기다리라면서
무정하게도 엄마만 데리고 어데론가 가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뒤 농반진반으로 따져 물으니,
엄마에게 대전역 명물 가께우동 맛보여주러 가셨단다)

나는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고 싶었지만
"사내 대장부가..."라는 질책만 받을 게 뻔해서
인파 사이로 사라져가는 두 분을
안절부절,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바로 옆의 기차가 덜컹거리는게 아닌가.
그 소리에 내 심장도 '덜컹'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 기차에 타고 있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 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기차가 금방이라도 떠날 듯 씩씩거리자
나는 더 이상 혼자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왠지 우선은 차에 타야 할 것만 같았다.
무조건 사람들을 따라 올라 탔다.
처음엔 문간에서 부모님이 오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사람들에 의해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기차 속은 매우 혼잡했다.
나는 다시 문간으로 나가려 햤지만
보이는 건 어른들의 다리 뿐,
그 다리들의 숲에 갇혀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다.
마음은 급한데 옴짝달싹을 못하겠고
이제 떠나겠다는 듯 기차가 꽥꽥 기적 소리까지 울리자
이젠 끝장이구나, 부모님과  영영 이별이구나 싶어
나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어느 아저씨가 고개를 숙여 나를 보더니
"엄마 아빠 어디 계시냐?" 하고 물었다.
누군가 아는체 해주는 것만으로도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몰라요"
"이 차에 타신 건 맞니?
"몰라요""
"어디 가는데?"
"서울요"
나는 울면서 다급하게 대답했다.
"얘, 이 차는 서울 안가"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 아저씨는 망설이지도 않고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막 플랫폼을 떠나고 있는 기차 밖으로 얼른 내려놓았다.

이제는 많이 한산해진 플랫폼에 내려진 순간
이버지가 노래진 얼굴로 달려왔다.
털석 무릎을 꿇고 내 어깨를 잡은 아버지가
한동안 말도 못하고 화난 표정으로 쳐다만 보시더니
아직도 어깨를 들석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 모습에
그만 허허 웃고 마셨다.

그날 서울로 가는 길에도
노래에서 처럼 비가 왔다.
그때 내가 잘못 탔던 기차는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만일 그 차를 타고 그대로 떠났다면 나는 어찌 됐을까.

지금도 대전역에 서면 심장이 쿵쿵 뛴다.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에 혼자 버려질 것 같은
그 날의 불안감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그리고 바로 이어
엄마를 찾은 안도감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묘한 향수,
그리고 엇갈린 운명에 대한 상념이
새벽비처럼 촉촉히 가슴에 젖어든다.
떠날 것은 떠나보내야 하는 오늘의 아픔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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