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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19 물개의 변명

물개의 변명

2006/12/19 09:59
수영 시작한 지 벌써 두달이 됐는데 아직 진전이 없다.
함께 시작했던 젊은 처녀 총각은 벌써 접영을 배우는데
한때 가장 촉망받던(?) 나는
아직도 자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치는 내가 폼은 나무랄데 없으나 몸에 힘이 들어간게 문제라며
힘은 천천히 빼시고 진도를 나가자고 하지만
그건 안될 말이다. 내가 사양한다.
왜 몸에서 힘이 빠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기전엔
난 한발도 앞으로 갈 수 없다.

나의 고집에 코치도 이젠 포기상태다.
나를 보면 늘 "힘을 빼셔야...." 라는 말 뿐.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갑자기 먼산만 본다.
(야 ! 그러지 마라. 나도 미치겠단 말야 !)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것 같다.
문제는 검도다.
몸에 밴 검도의 동작을 그대로 물 속에서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도에서는 공격해 들어갈때 '기검체 일치'를 강조한다.
몸이 적의 칼거리 안으로 뛰어들어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기의 발산과 함께 칼이 적을 타돌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발)과 칼(팔)과 기의 발산이 한순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때 발이 땅을 구르는 힘은 약 1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 1톤의 위력을 그대로 칼에 실어 쳐야 적의 뼈를 자를 수 있다는 것.
만일 기검체 일치가 안되면 그저 살을 베는 것에 그친다는 게 검도의 논리다.

또, 검도에서는 단 한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건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칼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는 적도 나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즉 죽임을 당하느냐 죽이느냐의 상황이 된다.
그래서 공격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되
일단 뛰어들때는 단 한 칼에 나의 모든 것,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빈틈을 본 순간 그야말로 단도직입, 일도양단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같은 동작을 수영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는 발과 팔이 별도로, 끊임없이, 또 부드럽게 움직여야 하는 수영과는 너무 다르다.
그러나 겉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폼만은 선수급이라는 부러움까지 받는다.
그러나 나는 늘 힘이 들고  숨이 차 죽을지경이다.

문제점을 안 뒤 신경을 써 수영을 해보니 확실히 힘도 덜들고 잘 나간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바로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만다.
30여년에 걸친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운동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스승이 하라는대로 무조건 하다보면 언젠가 몸이 알게 되고
그때 비로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머리가 먼저 이해를 해버렸으니
아무래도 몸이 따라줄때까진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다.

결국 물개 되기는 포기해야 하나?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검도를 오래 해도 수영에 문제가 없지 않은가.
왜 나만 그렇게 헤매고 있는가.

풀 쥭은 나에게 아내가 하는 말,
"당신은 뭐든 그렇게 힘들게 하더라.
이 닦을때도 봐, 이빨하고 무슨 웬수졌어?"

정말이다.
어찌나 힘 주어 이를 닦는지, 칫솔을 부러뜨린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도저히 습관을 고칠수 없어 전동칫솔로 바꾼지도 몇년이 됐는데
지금도 치과에 가면 의사로부터 칫솔질 살살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뿐이 아니다.
운전할 때, 특히 주차할때 어찌나 낑낑거리는지
이를 보던 아내가 웃거나 훈수를 두는 바람에 싸움을 벌인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내 오른쪽 셋째 손가락에는 아직도 굳은 살의 흔적이 있다.
학창시절 글씨를 너무 꾹꾹 눌러 썼기 때문이다.
당시엔 손가락이 기형으로 보일 만큼 굳은살이 심했다.

왜 나는 모든 일을 그처럼 힘 들여 할까.
곰곰 생각하니 내가 성격이 급하면서도 생각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성격이 급하면 대체로 단순하기 마련인데
나는 어떤 일의 처음에 서면 바로 그 끝을 생각할만큼 복잡하다.
당장 그 일을 매듭짓거나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지 않으면
모든 생각이 온통 그 일에 쏠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것이 부담이 돼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그건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그랬기 때문인가?
나는 되도록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해왔다.
웬만한 일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으려 한다.
(노자 선생님을 따라 '넋 나간 사람'처럼 살려고 얼마나 애 썼던가)
그런데도, 아니 어쩌면 그럴수록
기왕 하는 일엔 더욱 더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사실 수영이야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안하면 그만이다.
수영이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하지않으면 안될 일도 아니다.
어디 태평양 물개만 물갠가.
풀장에서 놀기에 부족함이 없으면 족하니
'도시의 물개'라도 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만두려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럴땐 어쩌지?
속수무책,
그저 세월이 가기를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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