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이 안된다

영농일기 2019/12/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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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빠지게 일 한 끝에 오른쪽 고랑이 왼쪽 처럼 됐다. 대체 난 뭔 일을 한 것일까?

고랑 정리를 5일만에 끝냈다.
이랑과 이랑 사이는 넓은데 고랑이 좁아
그동안 일하는 데 많은 불편이 있었다.

해놓고 보니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양쪽 고랑을 조금씩 깎아내린 뒤
이랑으로 퍼올린 것이 다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엄청 힘들었다.
오랜만에 몸을 쓴 탓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기간 밟고 다니다 보니
고랑 바닥이 마치 콘크리트 처럼 단단했다.
하루 고작 3시간 일을 했는데도
일을 끝내면 몸살이 나려고 했다.

이렇게 일을 할때 마다 느끼는 것이
농사의 형편없는 가성비다.
5일 동안이나 힘들게 일했지만 얻은 것이 무엇인가?
소득이 생긴 것도 아니고
내년 농사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니기가 조금 쉬워질 뿐이다.
이를 위해 이렇게 진을 빼야 했나?
농사 일은 할수록 손해라는 걸 이미 여러번 실감했지만
그래도 적응이 안된다.
힘들 때마다 가성비를 한탄하게 된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도 말한다.
농사 지으면서 돈 벌 생각 말라고.
그러면 농사는 왜 짓는가?
농사가 취미인가?
농사로 생계를 해결하는 자가 농부다.
취미로 농사짓는 사람은 농부라 할 수 없다.
나는 농사에 생계를 걸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농부가 되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왔다.
그러니 기본 소득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많은 귀농인이 가성비를 따지다 실수한다.
내가 아는 한 사람도
자기 밭의 일은 사람을 사서 하고
자기는 남의 밭에 가서 일하고 품삯울 받아
그 돈으로 자기 밭의 품삯을 준다.
그게 오히려 남는단다.
계산상으론 맞다.
자기가 하면 2,3일 걸릴 일이
사람을 사서 하면 하루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나에게 늘 돈 벌 일이 있거나
그 일이 품삯보다 가성비가 좋을 때나 맞는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다가 망하기 딱 알맞다.

그렇게 실없는 농사를 왜 다들 그만 두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씨를 뿌린 뒤 싹이 돋는 걸 보면
말로 다 못할 감동을 느낀다고.
그 맛에 농사를 짓는다고.

그런가?
나는 아니다.
씨 뿌리면 싹 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게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엔 오묘함을 느끼지만
사람이 하는 일엔 신비가 없다.
본래 싹 나라고 씨 뿌리지 않았는가?
안 나면 되레 이상한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손해를 보면서도 농사를 짓는 건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그게 아니면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손해 볼 걸 알지만
농사 안 지으면 뭘 할 것인가?
극히 일부의 성공적인 농부를 제외하곤
농사란 그들에게 다만 존재의 의미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농사로 느끼는 것이다.

나도 얼마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손해를 보진 않을 것이다.
또 농사에 과도하게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즐겁자고, 행복하자고 여기 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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