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은 농심

영농일기 2019/07/09 10:26
농사를 짓다보면 이웃으로부터 많은 충고와 조언을 듣는다.
가끔은 간섭이나 강요,
심지어는 욕설, 저주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왜 그렇게 과도한 관심을 가질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귀농인에게는 그것도 고맙다.

문제는 정작 필요한 정보를 물으면
대부분 알아서 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작물의 상태가 다르고 농토가 다르며 시설도 다르니
사실 정답을 내놓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망치기 직전, 혹은 망친 뒤에 주는 정보는
대단히 유용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정보라면 왜 진작 주지 않았을까?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이유가 뭘까?
그렇게 한번 진하게 고생을 해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뜻 언뜻 비치는 속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기들은 평생 농사만 지어왔는데
이제 겨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자기들보다 더 농사를 잘 지을 수는,
잘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은 실패를
귀농인들도 겪어야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농사를 잘 짓는 귀농인을 보면
자신들의 존재감에 엄청 상처를 받는 모양이다.

귀농 자체에 불신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이때문에 어느 귀농인은 5년 이상 후유증을 겪기도 했단다.
좋은 거름을 권해달랬더니
써서는 안되는 거름을 알려줘 밭을 망쳤단다.
이웃에 3년 넘게 살면서 친해진 뒤
그때 왜 그랬냐 물어보니
어차피 떠날 사람, 얼른 실패해서 떠나라고
그렇게 했다 하더란다.

고추농사를 지으며 나도
진작 알았다면 겪지 않았을 실패를 많이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생산량도 기대에 훨씬 못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원망하기보다 받아들이려 한다.
이렇게 배우며 나도 진짜 농민이 되지 않겠는가?
그들과 어울리는 농부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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