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소동

일상 속에서 2020/02/09 11:15
어제가 정월 대보름.
설날을 지낸지 벌써 보름이나 됐다.
올 설엔 남우와 두희 모두 내려왔다.
온 기족이 이렇게 함께 명절을 지낸 게 얼마만인가?
정말 의미 깊은 설이었지만
그만큼 즐겁게, 재미있게, 잘 지내진 못한 것 같다.

​ 하필 설 연휴 내내 내가 감기에 걸려 있었다.
심하진 않았지만, 몸이 안 좋으니 기분도 가라앉았다.
아이들에게 늘 찌푸린 모습만 보여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아 마음이 안좋다.

​ 감기는 두희에게 옮겨붙었다.
집에 다녀온 뒤 감기 들었다고 웃으며 불평(?)이다.
아내에게도 옮겨갔다.
웬만하면 약도 잘 안 먹는 아내가 병원까지 다녀왔다.
그렇지않아도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중국 우환 폐렴)'으로
온 세상이 난리인데
식구들에 미안하고 남들 눈치도 보인다.
두희는 곧 미국으로 연수를 가야 하는데
입국이나 체류 과정에서 문제가 될까 걱정이다.

​ 아내는 일주일 전 쯤 서울에 다녀왔다.
두희에게 설 음식을 나눠주고 병원에도 데려 갔단다.
그리고 내려온 뒤 바로 감기가 심해졌다.
이제 아내는 다 나은 것 같다.
두희도 괜찮다는데, 정말 괜찮기를.....

​ 오늘은 남우 생일이다.
떨어져 사니 미역국 조차 끓여주지 못한다.
코로나 사태로 일에 지장도 많다는데
부디 위기를 잘 넘기면 좋겠다.
오늘 하루가 다른 날 보다 훨씬 즐겁기를.
이어 좋은 날들이 활짝 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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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변했다.

일상 속에서 2020/01/23 17:19
설날이 코 앞에 다가왔다.
아내는 몇일째 설 음식 준비에 바쁘다.
아들에겐 뭘 해줄까. 딸은 뭘 좋아하더라?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싱글벙글이다.
전에 없던(?) 일이다.

​ 나는 집안의 차남이다.
그래서 설이나 추석에 따로 상을 차리지 않는다.
제사 땐 아내가 전을 부쳐 가지만
명절엔 형님께 안부만 전하고 그냥 집에서 쉰다.
아내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만들었다.
나가 놀든, 집에서 죽치든 모두 내 뜻대로 따랐다.
아이들에겐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 아내가 나는, 겉으론 무심했으나, 좀 이상했다.
속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 그런데 아내가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변했다.
나는 이제 둘째고,
언제나 서울에 남겨둔 아이들 생각만 한다.
이제 애들은 다 컸는데....
오히려 저들이 엄마를 생각해줘야 할 때인데.
이제부터 정말 내편을 들어줘야 하는데....

​ 나는 이제 자기 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툭하면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다.
농사를 이따위로 지을 거냐 욱박지르는가 하면
청소고 뭐고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고 잔소리다.
이 때문에 가끔 싸우기도 한다.

​ 하지만 요즘은 사이가 좋다.
설 음식을 준비하며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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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방래

일상 속에서 2020/01/06 13:53
 지난 주말 후배 2명이 왔다 어제 갔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이 한결같은 고마운 친구들이다.
덕분에 술을 많이 마셨다.
식도가 헐고 위장에 출혈이 있으니
절대로 음주와 밀가루 음식을 금하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처럼 기억을 잃을 만큼 많이 마셨다.
혹시 또 내가 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
한 친구는 올해가 정년이란다.
언제나 나이 어린 후배로만 생각했는데
그동안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구나.
그 마음이 얼마나 헛헛할까?.
내 마음이 지레 더 아프다.
제2의 인생을 차분히 준비하기를.
.
이로서 지난 연말부터 계속되어온 음주가
일단 끝을 맺었다.
시골에 오니 술 마실 일이 더 많다.
많이 마시진 않지만
이런 저런 모임, 이런 저런 핑계로
술 마시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젠 술을 확실하게 줄여야겠다.
농사를 위해서도 흐트러진 건강을 챙겨야 한다.
.
우울한 기분도 날려버릴 것.
눈 한 번 돌리면
바로 낙원 아닌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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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 해가 오다

일상 속에서 2020/01/02 16:00
올해는 나도 모르게 맞은 것 같다.
특별히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한 해가 가는 줄도, 새 해가 오는 줄도 몰랐다.

작년 12월 30일 공수처법이 마침내 통과됐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법이 과연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
지난 연말 내내 가슴을 졸였다.
이 때문에 세월이 가는 것도 몰랐던가?

공수처법은 그러나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됐다.
선거법 처리 땐 의장석까지 점거하며 반발했던 자한당은
이번엔 말로만 반대하면서 되레 자리를 비워줬다.
자기들도 속으로는 공수처법 통과를 바랐던가?

김대중으로부터 3대에 걸친 검찰 개혁 숙원이
이제 그 첫발을 내딛게 됐다.
추미애 법무장관 임명도 지체 없이 이뤄졌다.
하 수상하던 세월의 안개가 이제야 조금 걷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기엔 물렁해도 역시 보통이 아니다.
나라는 이제 그를 믿고 맡기면 될 듯싶다.
다만 진중권을 비롯한 비판의 목소리에도
설령 발목잡기, 트집잡기에 불과하더라도,
새겨들을 만한 것은 가려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나의 올해는 어떻게 될까?
올해도 농사의 실험은 계속될 것이다.
무농약에 더해 무경운 농법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아니 이미 시작했다.
성공하길 바라지만, 안 돼도 상관없다.
이미 농사에 목을 매지 않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농사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다.
지금 박물관 해설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일도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안 돼도 그만이다.
나는 그저 준비할 뿐이다.

그동안 나는 꾸준히 내일을 준비하며 살았다.
그러나 내가 준비를 덜 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할 일이 아닌 엉뚱한 준비를 했던지
나에게 그 일을 할 기회는 대부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론 내일을 준비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그냥 오늘만 충실하게 살겠다고 내려왔는데,
와서 살아보니 내일이 바로 오늘이더라.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사실은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내일이면 내일이 오늘이므로.
다만 안 된다고, 기회가 안 온다고 실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망은 언제나 어제에 대한 것이므로.
지금은 오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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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일상 속에서 2019/11/02 09:52
엊그제 형님 내외가 왔다 가셨다.
동생이 시골로 완전히 이사했다 하니 어찌 사나도 보고
부모님 산소도 둘러볼 겸 오신 것 같다.
이왕 멀리서 오셨으니 하루 이틀 머물다 가시기 바랐지만
극구 사양하고 그냥 가셨다.
형님은 더 있고도 싶은데
형수님 몸이 불편해 우리에게 부담을 줄까 그러신 듯 하다.

사관학교 출신인 형님은 나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다.
나도 고집이 세다 보니
1년에 겨우 한 두번 만나면서도 말다툼을 많이 벌인다.
형님은 하마 형제애를 상할세라 많이 참으셨고
그런 형님을 보며 화를 내던 나도 속으로 쿡쿡 웃었다.
남들 보기에 격렬하던. 아니 실제로 격렬하기도 했던 우리 싸움은
이렇게 한계를 넘지 않았다.

생전에 아버님게서는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한다고 신신 당부하셨다.
당신께서 큰 아버님과 친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제사 때마다 아버님 영전에
형님, 누이들과 잘 지내겠다 다짐하곤 했다.

형님은 우리에게 부담을 줄세라 외식을 하자 하섰지만
아내가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했다.
누이동생까지 참석해 누나를 빼곤 모처럼 온 식구가 한 자리 모였다.
저절로 옛 이아기가 쏟아진다.
마음이 둥둥 떠 옛날로 날아간다.
훌러간 날들은 모두 이렇게 아름답고 즐겁구나.
그러나 몇 시간도 안돼 형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형님 연세가 벌써 80이 가깝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계시지만
당뇨가 오래돼 합병증이 가끔 발생한다.
최근엔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당장 무슨 일이야 없겠지만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형님은 우리집에 다시 오실 수 있을까?
이 먼길을 또 오실 수 있을까?
몹시 서운하고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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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에게 하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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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2019/10/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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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려고 사 둔 땅을 놀리기 아까워
아내와 함께 콩을 심었다.
수확까진 바라지 읺고
농한지세나 물지 않으면 다행이라 했다.
논을 택지로 만들려고 트럭 100대 분의 흙을 부었는데
업자가 나를 업수이 보고
못쓰는 흙을 실어왔기 때문이다.

역시 콩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풀들만 무성, 풀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언제 한번 가보니
한 뼘밖에 안되는 키에 콩이 다닥다닥 달리지 않았는가!

토질이 척박하자 자기 키는 안 키우고
자손 남기는데만 온 힘을 쏟은 것 같다.
콩을 심은 뒤 몇번 풀만 뽑다 말고 팽개쳐 두었는데
속도 실하게 여물고 있다.
자식을 위해 하찮은 콩도 자신을 희생하는구나.
한편 기특하고 한편 안쓰럽다.

덕분에 나는 뜻하지 않은 소득이 생겼다.
하지만 콩은 나 때문에 헛수고가 됐네.
미안해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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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일상 속에서 2019/09/14 10:04
어제가 추석.
남우가 내려왔다 갔다.
여전히 교통난이 지옥이고
요즘 젊은이들 명절에 별다른 의미도 두지 않아
남우가 내려오리라곤 생각 안했다.
왔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왔다.
그것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길이 막힌다고 그 먼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니.
그 엉뚱함에 웃음이 났다.
녀석, 늘 내 의표를 찌른다.

서울에 살 때도 왔던가?
생각해보니 왔던것 같다.
그러나 와서도 말 한 마디 없어
와도 온 것 같지 않고
늘 서먹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엔 말이 좀 늘었다.
마음을 활짝 연 것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조금은 털어놨다.
내가 술을 한 잔 하자 하면 늘 거절하더니
술도 같이 몇잔 나눴다.
이런 일도 있구나.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 거구나.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이사오면서
아이들에게도 이곳이 고향이 된 것 같다.
두희는 미리 다녀가고
남우는 명절이라고 교통지옥을 뚫고 이곳에 온 것이다.

고맙고 기특하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마음이 아렸다.

남우가 돌아간 뒤
도착했단 소식을 듣기까지 안절부절 했다.
오는 건 좋지만
오고 가기가 너무 힘드니 안쓰럽고 미안하다.
다음에 또 올 때는
기차 타고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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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

일상 속에서 2019/06/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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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밖으로 보이는 빗속의 텃밭이 참 싱그럽다.

비 오는 날
농장 하우스에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건
귀농 뒤 얻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아내에게 갑자기 농장에 가자 했다.
가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 하자고.

어쩐 일인지 아내도 선뜻 따라 나선다.
정작 아내와 함께 가려니
아무래도 빗소리 보단 음악이 좋을것 같다.
미니 오디오를 들고 가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

그런데 아내가 문득
"우리 여기서 저녁 먹을까?" 한다.
냉장고 속 삼겹살을 가져다 구워 먹잔다.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아내는 집으로 저녁 준비를 하러 가고
나는 즉시 숯불 피울 준비를 했다.

빗 속의 커피 한잔이
따뜻한 저녁과
소주 한 잔으로 바뀌었다.

비는 종일 내리고
어느새 어둠도 내리고
얼큰한 내 마음 촉촉이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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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일상 속에서 2019/06/09 09:22
어제 남우와 두희가 왔다.
자식들이라고, 우리가 어찌 사는지 보러 온 것이다.
아이들이 큰 뒤 부터
함께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은 적조차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뿔뿔이 헤어진 뒤에,
그것도 멀리 이곳 시골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하게 되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나는 그저 반가운데
아이들은 아직도 좀 서먹한가 보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들 기억 속의 내 모습은
늘 찡그린 표정일 것이다.
특별히 자기들에게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만사에 심각했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알 리 없다.
나 또한 내 표정이 그토록 차갑고 심각한 줄
아주 늦도록 몰랐었다.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나는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뒷전이었다.
그 모두가 사실은 나의 욕심, 나의 헛된 승부욕이었건만.....
뒤늦게 이를 알았을때
아이들은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지금도 너무 후회스럽다.
아내, 특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러나 아내와 달리 아이들은
이미 실 끊어진 연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특히 남우는
여전히 굳은 표정에 말이 없지만
누구보다 속정이 깊다.
내가 대전으로 자의반 타의반 내려갈 때부터
참으로 세심하게, 온갖 배려를 해주더니
얼마전에도 무슨 바베큐를 보내왔더라.
엄청 맛있다고 소문났다며 드셔보시라고.

두희도 앞으로 달라질까?
우리에게 잘 하기 보다
제 길이라도 좀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
늘 씩씩한 척 하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 늘 불안불안하다.
우리 두희, 좀 덜 전투적이면 좋겠다.

토종닭을 사다가 농장에서 닭죽을 만들어 먹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먹으니
고기도 맛있고 술도 맛있다.

오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
올 때보다 표정들이 편해져 좋다.
신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이곳을
아이들이 언제나 찾아와 쉴 수 있는
최고의 쉼터, 최후의 의지처로 가꿔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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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일상 속에서 2019/05/18 15:55
어제 남우가 이사를 했다.
그보다 이틀 전엔 두희가 이사를 했다.
내가 지난달 29일 이사를 했으니
불과 한 달 사이 온 가족이 따로 이사를 한 셈이다.

이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구나.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었다.
남우는 남우 대로,두희는 두희 대로,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모두 새 출발을 한다.

용감하게 집을 뛰쳐나갔던 남우는
이제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재정비를 할 때다.
지금껏 엄마와 살아온 두희는
이제 홀로 제 갈길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아내도,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아내도
이제 시골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나는 귀농한지 3년째.
그러나 올해도 실수의 연속이다.
농사엔 정해진 법이 없다.
최상승의 불법은 정해진 법이 없다지만
농사는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작년에 이미 그렇다는 것을 알고
올핸 내 생각대로 하리라 작정했지만
경험이 없다보니 또 남의 말에 휘둘리고 말았다.

고추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장대하게 큰 것도 많지만
성장이 미흡한 것도 그만큼 많고
오늘 내일 하는 고추도 수십 포기다.
아무래도 물주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점적호스를 한 줄씩 포기 가까이로 옮겼지만
효과는 별무신통이다.

텃밭에 심은 토마토 가지 호박도
모종 하루만에 잎들이 다 타서 떨어지고
새로 어렵게 잎을 틔우고 있다.
이러려면 뭐하러 모종을 심을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원인을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그제는 농기센터 황과장을 초대해 의견을 물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으나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애꿎게 술만 잔뜩 마셨다.
센터 직원들은 술을 안 마셔
혼자서 대취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술김에 또 전화를 20여 통이나 했더라.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내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한 말을 기억 못하니
내심 불안하고, 그런 내가 한심하고,
정말로 우울해 못 살겠다.

3년은 농사를 지어봐야 비로소 농부가 된단다.
나는 1,2년 안에 해 내겠다 큰소리 쳤는데
아무래도 3년 다 걸려야 할 듯하다.

아무려면 어떠냐?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간들, 멀리 간들
결국엔 모두 만난다.

우리 남우와 두희도 초조해 하지 말고
히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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