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농사

영농일기 2020/02/21 15:38
밭에 퇴비와 천매암을 뿌렸다.
퇴비 회사에 배달을 재촉했더니 일요일에 실어왔다.
덕분에 계획보다 조금 이르게 시비 작업을 마쳤다.
퇴비 35포와 천매암 7포를 옆구리에 끼고 뿌렸더니
허리가 뻐근하다.

​ 귀농 4년, 농사 3년차지만
해마다 처음 농사를 짓는 것 같다.
항상 안 해본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기농에 더해 무경운으로 농사를 짓는다.
농부에게 밭 가는 일은 기본인데
밭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사실 나도 자신은 없다.
그러나 농사도 자연을 닮아야 한다면
무경운 농법이 맞긴 맞는 것 같다.

​ 처음부터 농약을 쓰지 않다 보니
해마다 농사를 망쳐 손해만 본다.
올핸 제대로 농사를 지어야 할텐데.

​ 밭에 고정식 동력 분무기를 설치했다.
수동, 엔진 동력, 충전식에 이어 분무기만 벌써 4개째다.
등에 지지 않고 호스를 끌고 다니며 물과 약제를 살포하는 것으로
내 밭의 규모엔 사실 과분한 장치다.
그러나 경험 부족을 장비로라도 메꾸기 위해
조금 무리를 했다.

​ 이제 관정을 재가동 하는 일이 남았다.
지금은 날씨가 따뜻하지만
갑자기 추워지면 동파될 수도 있다.
아무래도 3월까진 기다려야겠지?

​ 텃밭의 땅은 많이 녹았다.
하지만 너무 질퍽해 손을 댈 수가 없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이러다 일이 한꺼번에 몰릴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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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깊은 산골에 웬 사람들이...

영농일기 2020/01/16 12:39
어제 상주로 고추 교육을 갔다 왔다.
자닮식으로 유기종 묘목을 기르는 곳이다.
나는 칼라탄 72구 6판을 주문했다.
올핸 모종부터 제대로 골라 해봐야지.

​ 상주 가는 길은 험했다.
'이랴', 옆구리를 들이차도 가는듯 마는 듯,
나의 늙은 애마로는 감당이 안되는 험한 산구비를
가슴을 졸이며 몇번이나 오르내려 찾아갔다.

​ 가봤자 무슨 대단한 수가 있다고....
이 먼길을 가는 나도 참 열심이다..
그러나 도착해보니 100명 가까운 사람이 몰려왔다.
거제에서도 제주에서도 왔단다.
놀랍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이 사람들, 유기농이 뭔지나 알고 온거야?
농사만 어렵고 돈도 별로 안 되는데......

​ 자닮을 통해 알게 된 오늘 강사이자 육묘장 대표는
농사에 관련된 공직에 있다가 18년전 귀농했단다.
그동안 실패를 거듭하다가 이제야 노하우를 습득했다고.
오늘 오신 발품값은 확실히 거두게 해주겠단다.
그러나 자닮식 영농법을 책으로, 동영상으로 이미 배운 터라
색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실제 농사를 짓다보면 이론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며
자닮 강의와는 다소 다른 의견도 비친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느끼던 바다.

​ 내 실패담을 얘기하고 해법을 묻자
예상했던 답변을 내놓는다.
내 생각대로 해야 맞단다.
그러나 무경운 농법에 대해선 우려를 한다.
분명 좋은 농법이지만, 유기농 1,2년 했다고 시도하기엔
땅이 아직 준비가 안됐을 거란다.

​ 어쩌지?
그러나 무경운에 적절해지는 때가 언제인가?
3년 뒤? 5년 뒤?
그러기엔 내 남은 농사 인생이 너무 짧다.

​ 자닮에선 자신을 갖고 권하던데....
자닮 강의를 믿기로 한다.
지금까지도 강의만 믿다가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내가 배운대로 제대로 못한 부분도 있다.
이번엔 잘 해봐야지.

​ 다만 아내가 알까봐 걱정이다.
내가 무경운 한다니 또 엉뚱한 짓 한다고 난리인데
전문가가 말리더란 얘기까지 들으면....
그냥 모르는체 강행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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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지 말라

영농일기 2020/01/12 15:35
하우스 밖의 빈터에 퇴비를 깔았다.
작년 검정콩을 심었던 곳엔 12포를,
그리고 파를 심었던 곳엔 7포를 뿌렸다.
대추나무 5그루에도 2포를 선물했다.

​ 겨울이 한창인 지금 퇴비를 뿌린 것은
겨울이라고 손놓고 놀 수만은 없고
무엇보다 봄철 허둥지둥 하기 않기 위해서다.
2년 전 농사를 처음 지을 땐 200평이나 되는 빈터를 그대로 놀렸다.
승부수였던 잎들깨 재배에 쫒겨 다른 일은 생각도 못했다.
작년엔 토마토, 파, 깨, 콩, 상추 등 제법 많은 작물을 심었으나
어영부영 하다 시기를 놓쳐 작황이 좋지 않았다.

​ 올해는 농사도 3년차니, 이제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생전 처음 농사를 지으면서 무농약, 유기농을 한답시고
2년간 고생만 실컷 하고 큰 적자를 보았다.
남들은 유기농은 안 된다고, 괜히 헛고생 말라고 지금도 말리지만,
올해도 역시 유기농이다.
무엇이든 3년은 해야 해봤다 하지 않겠는가?
2년간 경험 했으니 아무래도 올핸 낫겠지.

​ 올핸 유기농에 더해 무경운 농사를 시도한다.
2년간 경험을 했다지만 사실상 또 다시 첫경험인 셈이다.
그런 만큼 두려움도 있다.
올핸 그래도 성과가 좀 있어야 하는데....

​ 아내는 농사도 모르면서 왜 남들을 따라 하지 않느냐고 성화다.
그러면 슬퍼진다.
뒤늦게, 남들은 할 일 없이 쉬는 나이에 농사 한번 지어보겠다는데
왜 무조건 남들 따라 하라는가?

​ 처음 하는 일은 되도록 남이 하는대로 따라 하라지만
따라 한다고 나도 잘 되던가?
붓다는 모든 일에 정해진 법이 없다 하셨다.
농사에도, 2년간의 내 경험에 따르면, 정해진 법이 없다.
마땅히 정해진 법이 없으니
농사도 내가 짓고싶은대로, 내가 공부한대로 한다.

​ 평생을 내 식대로, 내가 옳다고 믿는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온전하게 내식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
이제 농사라도 내 맘대로 지어보겠다는데.....
누구도 말을 말라.
적어도 3년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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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이 안된다

영농일기 2019/12/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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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빠지게 일 한 끝에 오른쪽 고랑이 왼쪽 처럼 됐다. 대체 난 뭔 일을 한 것일까?

고랑 정리를 5일만에 끝냈다.
이랑과 이랑 사이는 넓은데 고랑이 좁아
그동안 일하는 데 많은 불편이 있었다.

해놓고 보니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양쪽 고랑을 조금씩 깎아내린 뒤
이랑으로 퍼올린 것이 다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엄청 힘들었다.
오랜만에 몸을 쓴 탓이기도 하겠지만
오랜 기간 밟고 다니다 보니
고랑 바닥이 마치 콘크리트 처럼 단단했다.
하루 고작 3시간 일을 했는데도
일을 끝내면 몸살이 나려고 했다.

이렇게 일을 할때 마다 느끼는 것이
농사의 형편없는 가성비다.
5일 동안이나 힘들게 일했지만 얻은 것이 무엇인가?
소득이 생긴 것도 아니고
내년 농사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니기가 조금 쉬워질 뿐이다.
이를 위해 이렇게 진을 빼야 했나?
농사 일은 할수록 손해라는 걸 이미 여러번 실감했지만
그래도 적응이 안된다.
힘들 때마다 가성비를 한탄하게 된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도 말한다.
농사 지으면서 돈 벌 생각 말라고.
그러면 농사는 왜 짓는가?
농사가 취미인가?
농사로 생계를 해결하는 자가 농부다.
취미로 농사짓는 사람은 농부라 할 수 없다.
나는 농사에 생계를 걸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농부가 되기로 작정하고 이곳에 왔다.
그러니 기본 소득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다.

많은 귀농인이 가성비를 따지다 실수한다.
내가 아는 한 사람도
자기 밭의 일은 사람을 사서 하고
자기는 남의 밭에 가서 일하고 품삯울 받아
그 돈으로 자기 밭의 품삯을 준다.
그게 오히려 남는단다.
계산상으론 맞다.
자기가 하면 2,3일 걸릴 일이
사람을 사서 하면 하루면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나에게 늘 돈 벌 일이 있거나
그 일이 품삯보다 가성비가 좋을 때나 맞는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다가 망하기 딱 알맞다.

그렇게 실없는 농사를 왜 다들 그만 두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씨를 뿌린 뒤 싹이 돋는 걸 보면
말로 다 못할 감동을 느낀다고.
그 맛에 농사를 짓는다고.

그런가?
나는 아니다.
씨 뿌리면 싹 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게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엔 오묘함을 느끼지만
사람이 하는 일엔 신비가 없다.
본래 싹 나라고 씨 뿌리지 않았는가?
안 나면 되레 이상한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손해를 보면서도 농사를 짓는 건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그게 아니면 할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손해 볼 걸 알지만
농사 안 지으면 뭘 할 것인가?
극히 일부의 성공적인 농부를 제외하곤
농사란 그들에게 다만 존재의 의미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농사로 느끼는 것이다.

나도 얼마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손해를 보진 않을 것이다.
또 농사에 과도하게 매달리지도 않을 것이다.
즐겁자고, 행복하자고 여기 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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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의 비법

영농일기 2019/12/05 15:44
오늘 멀칭매트를 모두 걷었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혼자 하긴 어려워
아내가 편한 날을 기다려 함께 일을 나갔다.
역시 함께 하니 일이 쉽다.
아내는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쫑알쫑알,
나는 나보다 일도 못하면서 웬 잔소리냐 버럭 버럭,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일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힘도 별로 안 든다.

아내는 항상 내가 하는 일에 불만이다.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는 거다.
맞다.
그런데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농사일은 절대로 너무 잘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소득은 대충 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더라.
신경만 피로하고 스트레스만 쌓이더라.

농군 중에는 사관생도 처럼 일하는 사람도 있다.
고랑 하나를 내도 열과 오를 철저하게 맞추고
가지를 쳐도 모두 반듯하고 보기 좋게 마무리 한다.
그러나 비뚤게 심었다고 열매가 안 열리나?
대충 가지 쳤다고 덜 열리나?
품질도 수확량도 좀 낫긴 하지만
애쓴 만큼 돈이 되지는 않는다.

본래 농사가 그렇다.
가소성이 너무 형편없다.
농부도 자기가 농사짓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훨씬, 훨씬, 훨씬 싸게 든다.
아니, 농사 지을수록 손해가 커지는 게 다반사다.
그러니 농사 열나게 지어 뭐 하겠는가?
차라리 대충 짓는 것이
힘도 덜 들고 실망도 덜 하다.

그래도 농사는 열심히 지을 것이다,
그러나 설렁설렁 할 것이다.
설렁설렁 열심히,
그게 내가 터득한 농촌생활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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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을 닫다

영농일기 2019/11/15 19:59
오늘 관정을 닫았다.
앞으로 물 쓸 일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올 농사가 끝났다는 말이다.

진작 밭 정리를 해야 했지만
차일 피일 미뤄왔다.
싱싱한 고추가 아직도 너무 많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붉어져 손해를 줄여줄까 했지만
이들은 기대와 달리 그다지 붉어지지 않았다.
그냥 갈아엎어?
그러기엔 너무 아깝고
따서 풋고추로 팔자니
실익도 없이 몸만 축낼 것 같았다.
그새 기온이 두어차례 영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추들이 상해버렸다.

고추 꽃 한 송이만 떨어져도 안달복달했는데
수천개, 어쩌면 그 이상의 탐스런 고추가
헛되이 상해가고 있다.
인간에게 소중함이란 무엇이던가?
가치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던가?
고추로 인해 새로운 눈을 떴다.

본래 어떤 것에도 가치라는 게 없다.
앞으로 나는
어떤 가치에도 자유로울 것이다.

오늘 관정을 닫았지만
실제로 밭을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하는 듯 일하지 않고
노는 듯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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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

영농일기 2019/11/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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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콩 타작을 했다.
애 써 털어보니 모두 두 서너 말?
400평 밭이면 최소 서너 가마니는 나와야 한다는데
반에 반에 반, 그 반도 안되는 셈이다.
남들이 보고 웃겠다.
그러나 나는 이마저도 감사하다.
계산상으로는 손해지만
애초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버럭 화가 나기도 한다.
농사 일이라는 게
품은 많이 들고 결과는 늘 시원찮다.
400평 밭의 콩을 뽑고 말리는 데만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었다.
그러나 돈으로 치면 몇 푼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콩 털기도 만만치 않더라.
온몸이 뻐끈하다.
앞으로도 돌 고르는 일이 남았다.
경험이 없어 그런지
털어낸 콩에 흙과 돌이 반이다.
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골라내나?

앞으로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자꾸 고민하게 된다.
내년까진 해보겠다고 작정했지만
불안과 걱정을 숨길 수 없다.

뭐라?
걱정이라고?
걱정이 많다고 뭔 걱정을 그리 하는가?
삻이란 본래 불안과 걱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또한 실체가 없는 공이다.
없는 걱정을 왜 걱정하는가?
그저 바라볼 일이다.
보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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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영농일기 2019/10/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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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두꺼비인가 맹꽁이인가?
아님 그냥 개구리?
개구리라면 대물이다.

우리 농장엔 대물이 많이 산다.
거미도 모두 왕거미이고
사마귀도 거의가 장사급이다.
벌레 잡아먹으라고 내가 보고도 모른체,
아예 멀리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농약을 안 쓰니 땅 속엔 지렁이도 많아
이들을 잡아먹으려 두더쥐는 물론
뱀까지 하우스 안으로 가끔 들어온다.

그런데 이것들,
제몸들만 불렸지
배가 부르면 내가 잡아주길 원하는 벌레는 본체 만체다.
덕분에 올 고추 농사는 망쳤다.
모두가 이들 탓은 아니지만
절반을 벌레들이 잡쉈다.

내년엔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들 맘껏 놀라고 만들어준 풀밭을
내년엔 없애버릴 생각이다.
남들이 그러더라.
풀밭이 가까이 있으면 벌레가 더 극성이라고.
나는 반대로 생각했는데,
내년 해보면 누가 맞는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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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영농일기 2019/09/24 19:10
이제 가을인가?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서늘하다.
풀들도 기세가 꺾였다.
예전엔 베어내기가 무섭게 일어서더니
일주일 전 베어낸 자리가 아직도 누렇다.
베어낸 풀이 마르도록 새 풀이 자라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올해 더 이상 풀을 깎는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벌레들은 여전하다.
아직도 고추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보이지도 않던 벌레들이
요즘들어 자주 눈에 띈다.
가을이 오면서 벌레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가,
아님 이제서야 내 눈에도 숨은 벌레가 보이는 건가?

처음엔 벌레를 보면 장갑부터 찾았다.
맨손으론 도저히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갑을 찾아 오면 벌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어디에 있었는지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번번히 놓치다 보니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농사를 지으려는 거야 말려는 거야?
눈 딱 감고 맨 손가락으로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흉칙한 색깔과 감촉에 진저리를 쳤지만
몇 번 해보니 할만 했다.
그러나 지금도 벌레를 잡으면 바로 손부터 씼으러 간다.
내년 쯤엔 벌레를 잡은 손 그대로
맛있게 밥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올 고추농사는 이미 끝난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고추가 달려있고 무수히 꽃들이 피어나지만
이제 더 이상 열매가 붉어지진 않는단다.
그렇다면 고추가루는 80근으로 끝나는 건가?
600근 목표가 80근으로 끝나다니
허탈하고 창피하다.

올 농사에 실패한 건
초기에 고추나무 관리를 잘못한 것도 있지만
별레를 거의 못잡은 탓이 크다.
벌레들은 꽃이 필때 꽃 속으로 침입,
고추 속에서 고추와 함께 큰단다.
일단 들어가면 방제할 방법이 없단다.
그래서 꽃이 필 때 소독을 자주 하라고 한다.
꽃은 매일 수많은 꽃을 피우는데,
그럼 날마다 약을 쳐야 하나?
이건 아닌 것 같다.
날마다 친다 해도
약을 친 뒤 피어난 꽃들은 또 어쩔 것인가?

이 때문에 화학농약으로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보는 피해라면,
설사 좀 더 피해를 본다 해도 큰 차이만 아니면
무농약을 고집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 차이기 크지 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내 경우, 반반 정도를 각오했지만
벌레가 3, 내가 2를 먹은 것같다.
그런데 용세 성님 고추밭은 너무나 깔끔하더라.
벌레 먹은 고추 하나 없이 아직도 싱싱하기만 하더라.
우리 밭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라.

그런가?
화학농약을 치면 이렇게 효과가 있는가?
그만큼 내 농약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님 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는가?

올 농사가 잘못된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 농사도 장담하기 어렵다.
600은 커녕 200근 넘기기도 쉽지 않다.
내년 농사 시작 전에
반드시 해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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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徨先生 2019/10/04 19: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列子的歌!!

  2. 쥔장 2019/10/05 15:37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황룡선생, 어찌 이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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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영농일기 2019/09/07 09:45
밭에 갈 때마다 벌레 먹은 고추를 몇 바구니씩 딴다.
방제를 할 때마다 강도를 높여봤지만
약물이 신통찮은지 효과가 별로다.
게다가 요즘 비가 와서 그런지
우리 밭이 동네 날벌레 집합소가 됐다.
내가 발에 들어갈 때마다 수십, 수백마리의 나방이
시위하듯 일제히 날아오른다.
기가 막히고 무섭기도 하다.

벌레들, 참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성한 고추와 상한 고추가 반반이다.
아니 어쩌면 벌레 먹은 고추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유기농을 고집하면서 벌레들과 나눠먹는단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먹고 남은 것을 벌레가 먹는 것이 아니라
벌레가 먹고 남은 것을 내가 수확하는 꼴이다.
그래도 병은 없으니(아직까진) 다행이다.

오늘 자닮오일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밭에 벌레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나에게 있겠지?
천연농약을 내가 잘못 만든 탓이겠지?
이번엔 제대로 만들어야겠다.
2번 실패했으니 이번엔 정말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안된다면?
유기농 소리,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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