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분류없음 2019/11/3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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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감자, 홍감자를 캤다.
지난 여름 고추가 무더기로 쓰러진 뒤
빈 자리를 그냥 두기 아깝고 보기에도 안 좋아
감자를 심었었다.
내년엔 무경운으로 농사를 지을 예정이어서
멀칭도 그대로 둔채 고추 심었던 자리에 그대로 씨감자를 넣었다.
그런 만큼 수확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가 없으니 서리가 내리고도 캘 생각을 못했다.
차일 피일 미루다 오늘 캐보니
그래도 생각보단 많은 감자가 나온다.
정말 땅은 거짓말을 못하는구나.

감자를 캐기 전 고추대를 모두 제거했다.
예초기로 자를 예정이었으나 제대로 작동을 안 해
가지들을 하나 하나 손으로 꺾었다.
내가 하면서도 참 무식하게 일한다 싶었는데
하다 보니 일 같지도 않게 끝난다.
역시 나는 농군 체질인가?

감자를 캐면서 보니
멀칭에 가려졌던 땅의 토질이 무척 좋아보이더라.
그동안 미생물을 만들어 꾸준히 투입했는데
농사는 몰라도 땅은 잘 가꾼 건가?
내년 농사라도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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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을 닫다

영농일기 2019/11/15 19:59
오늘 관정을 닫았다.
앞으로 물 쓸 일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올 농사가 끝났다는 말이다.

진작 밭 정리를 해야 했지만
차일 피일 미뤄왔다.
싱싱한 고추가 아직도 너무 많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붉어져 손해를 줄여줄까 했지만
이들은 기대와 달리 그다지 붉어지지 않았다.
그냥 갈아엎어?
그러기엔 너무 아깝고
따서 풋고추로 팔자니
실익도 없이 몸만 축낼 것 같았다.
그새 기온이 두어차례 영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추들이 상해버렸다.

고추 꽃 한 송이만 떨어져도 안달복달했는데
수천개, 어쩌면 그 이상의 탐스런 고추가
헛되이 상해가고 있다.
인간에게 소중함이란 무엇이던가?
가치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던가?
고추로 인해 새로운 눈을 떴다.

본래 어떤 것에도 가치라는 게 없다.
앞으로 나는
어떤 가치에도 자유로울 것이다.

오늘 관정을 닫았지만
실제로 밭을 정리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일하는 듯 일하지 않고
노는 듯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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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

영농일기 2019/11/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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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콩 타작을 했다.
애 써 털어보니 모두 두 서너 말?
400평 밭이면 최소 서너 가마니는 나와야 한다는데
반에 반에 반, 그 반도 안되는 셈이다.
남들이 보고 웃겠다.
그러나 나는 이마저도 감사하다.
계산상으로는 손해지만
애초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버럭 화가 나기도 한다.
농사 일이라는 게
품은 많이 들고 결과는 늘 시원찮다.
400평 밭의 콩을 뽑고 말리는 데만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었다.
그러나 돈으로 치면 몇 푼이나 되겠는가?
게다가 콩 털기도 만만치 않더라.
온몸이 뻐끈하다.
앞으로도 돌 고르는 일이 남았다.
경험이 없어 그런지
털어낸 콩에 흙과 돌이 반이다.
이들을 어떻게 일일이 골라내나?

앞으로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자꾸 고민하게 된다.
내년까진 해보겠다고 작정했지만
불안과 걱정을 숨길 수 없다.

뭐라?
걱정이라고?
걱정이 많다고 뭔 걱정을 그리 하는가?
삻이란 본래 불안과 걱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또한 실체가 없는 공이다.
없는 걱정을 왜 걱정하는가?
그저 바라볼 일이다.
보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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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일상 속에서 2019/11/02 09:52
엊그제 형님 내외가 왔다 가셨다.
동생이 시골로 완전히 이사했다 하니 어찌 사나도 보고
부모님 산소도 둘러볼 겸 오신 것 같다.
이왕 멀리서 오셨으니 하루 이틀 머물다 가시기 바랐지만
극구 사양하고 그냥 가셨다.
형님은 더 있고도 싶은데
형수님 몸이 불편해 우리에게 부담을 줄까 그러신 듯 하다.

사관학교 출신인 형님은 나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다.
나도 고집이 세다 보니
1년에 겨우 한 두번 만나면서도 말다툼을 많이 벌인다.
형님은 하마 형제애를 상할세라 많이 참으셨고
그런 형님을 보며 화를 내던 나도 속으로 쿡쿡 웃었다.
남들 보기에 격렬하던. 아니 실제로 격렬하기도 했던 우리 싸움은
이렇게 한계를 넘지 않았다.

생전에 아버님게서는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한다고 신신 당부하셨다.
당신께서 큰 아버님과 친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제사 때마다 아버님 영전에
형님, 누이들과 잘 지내겠다 다짐하곤 했다.

형님은 우리에게 부담을 줄세라 외식을 하자 하섰지만
아내가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했다.
누이동생까지 참석해 누나를 빼곤 모처럼 온 식구가 한 자리 모였다.
저절로 옛 이아기가 쏟아진다.
마음이 둥둥 떠 옛날로 날아간다.
훌러간 날들은 모두 이렇게 아름답고 즐겁구나.
그러나 몇 시간도 안돼 형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형님 연세가 벌써 80이 가깝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고 계시지만
당뇨가 오래돼 합병증이 가끔 발생한다.
최근엔 실명 위기까지 겪었다.
당장 무슨 일이야 없겠지만
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형님은 우리집에 다시 오실 수 있을까?
이 먼길을 또 오실 수 있을까?
몹시 서운하고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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