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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

영농일기 2019/08/0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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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벌써부터 붉은 고추를 따고 있다는데
우리 고추들은 이제야 조금씩 익고 있다.
하우스 안인데도 왜 이리 늦을까?

그나마 성한 게 반, 벌레먹은 것이 반이다.
어쩌면 상한 고추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밭에 갈 때마다 벌레 먹은 고추를 한 가득씩 따내니
일을 해도 즐겁지 않다.
밭에 나가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최소 일주일에 1번, 최근엔 2번씩 하는 등
남들보다 방제도 많이 했는데 왜 그럴까?
내가 만든 약제가 효과가 없는 것일까?
매뉴얼대로,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본래 효과가 없었던 것인가?
내가 속은 것인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자주, 그렇게 많이, 그렇게 정성들여 방제했으면
이렇게 많은 고추가 상할 순 없다.
어린 고추부터 특급 크기의 고추까지,
심지어 수확 직전의 붉은 고추까지 떨어지는 걸 보면
속에서 울화가 끓는다.

벌레들도 참 염치가 없다.
어찌 그리 융단폭격하듯 파먹는가?
농약을 안 쓰면 동네 벌레가 다 몰려 온다더니,
왔으면 적당히나 하시지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유기농 한답시고 고추들 고생만 시키는 거 아니냐고
동생이 나무랐었다.
아니라고, 남들 고추는 겉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농약에 절어 죽지 못해 사는 거라고,
그래서 조금 작고 못생겨도,
벌레에 조금 시달려도
차라리 우리 고추가 낫다고 변명했었다.

그러나 요즘엔 나도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고추가 갑자기 곯아 떨어지는 것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구멍이 뚫려 있다.
벌레가 속에서 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주인의 쇠고집으로
이렇게 많은 고추를 곯아 떨어지게 하다니...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 같다.

그래도 가끔씩 보이는 잘 익은 고추는
나를 설레게 한다.
빛깔이 너무 예쁘다.
다른집 고추 같이 그냥 빨간 것이 아니라
불타오르는 것 처럼 강렬하게 붉다.
(혹시 내 눈에만 그런가?}

내년엔 어떡하나.
다시 고추 농사를 지어야 하나?
또 다시 죄나 짓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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