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3'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9/08/03 땡땡이

땡땡이

영농일기 2019/08/03 09:49
요즘 가끔씩 밭에 나가지 않는다.
할 일이 없어도 마치 문안인사나 드리듯
그동안 아침 저녁으로 꼬박 꼬박 밭을 찾았었다.
그러나 이젠 아침, 혹은 저녁은 자주 거른다.
외지에 나가거나 불가피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없던 일이다.

땡땡이가 이런 것일까?
학창시절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히죽 히죽 웃으며 학교를 빼먹던 아이들이
이런 맛에 땡땡이를 쳤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철석같이 믿는 자에게 배신을 때리는 듯한,
어쩌면 스스로를 배신하는 듯한
이 묘한 쾌감.

남들은 사흘에 한번,
어떤 땐 일주일에 한 번밖에 밭에 가지 않는다더라.
그래도 나보다 농사 잘만 짓더라.
그리고
농사 잘 짓는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더라.

그제 용세 성님과 영철씨에게 점심을 샀다.
평소 술 한잔 사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 안 죽었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다.

풋고추는 잘 팔았느냐고 묻기에
20상자에 10만원밖에 못받았다고 하자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도 잘 받은 거란다.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어느 귀농인은
어제 60상자 내고 7만 2000원 받았단다.

농사 잘 지으면 뭐하나?
한 상자에 달랑 1200원.
상자 값 1000원, 운송비 200 빼면 남는 게 없다.
60상자나 땄으면 인부를 썼을 텐데
그만큼 고스라니 손해를 본 것이다.
수확을 포기해야 할 판이다.

농사 잘 됐다고 웃을 일도,
안 됐다고 울 일도 아니다.
붓다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모두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라고.

앞으론 하루, 혹은 몇일씩도 빼먹을 작정이다.
그렇다고 농사를 팽개치자는 건 아니다.
일 할 때는 열심히 해도
일에 얽매이진 않을 것이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www.eltalk.net/trackback/885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