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

일상 속에서 2006/07/30 18:52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 이라던가.
예전에 고향 가는 길에 대전에 잠시 들르면
이곳 여자들이 그렇게 촌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한껏 모양을 낸 사람을 보면 오히려 더 촌티가 나서 남 몰래 웃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이곳 대전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촌스럽던 여인들이 갑자기 풋풋해 보이는 것이다.

촌스럽다는 것과 풋풋하다는 것.
그건 본래 같은 것인가, 내가  간사한 것인가.
아님, 나도 벌써 촌사람이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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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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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기진 2006/07/31 18:22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한번 들러봤습니다.
    본부장의 글을 읽어보고
    행간의 의미도 되새겨보며
    조금 궁금한 점도 해소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는 저를 생각하며
    '이제 한 식구가 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너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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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주말부부

마음의 편린 2006/07/30 11:03
흩어져 살던 부부도 이젠 합쳐야 할 나이.
이 뒤늦은 나이에 이른바 주말부부가 됐다.
친구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 이제 남은 사람이 별로 없고
회사에서도 선배나 동료를 찾기 힘든 지금,
왜 나는 느긋이 물러나있다 퇴직하지 않고
굳이 지방근무를 자원했는가.
아직도 욕심이 남아 있는가?

그렇다.
나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거의 해보지 못했다.
나름대로 노력은 했지만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이대로 뒷전에 물러나있다 회사를 떠나게 되면
이제껏 한 길을 걸어온 내 자긍심이 무너질 것 같다.
내 인생의 1막을 실패로 막 내리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여전히 세상을 바꾸고싶은가?
그러기엔 이미 우리 시대가 아니다.
내게 그 일에 매진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임은
이미 오래전에 알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고개를 뻣뻣이 들고 버틴 건
나의 오기와 혹시나 하는 미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련도 해오던 일을 떠난 4년전 버렸다.

이제 나는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딛고 서려 한다.
지금까지는 숲을 보고 살았다면
이젠 나무를 보며 살려 한다.
어느 지역의 나무를 단호히 베어내고
어떤 지역에 무슨 나무를 심어야 하는 지는
이제 후배들이 할 일이다.
이제 나는 숲으로 들어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피는 것으로
내 인생 1막의 대미를 맞으려 한다.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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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다시는 집에 가지 못하리?

일상 속에서 2006/07/24 15:57
내가 뒤늦게 주말부부가 됐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걱정을 한다.
안그래도 은퇴를 하면 쫓겨날까 마누라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데
도대체 어쩌려고 이제 와 떨어지려고 하느냐는 거다.
이제 다시는 집에 돌아가기 틀렸다는 악담도 한다.

하긴 나이 많은 남자의 비애를 풍자한 우스개 소리가 낭자하다.
이사를 가면 재빨리 트럭에 올라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구문이고
이젠 애완견을 가슴에 품고 놓치지 말아야 한단다.
마누라가 남편은 떼어놓고 가도 개는 챙기므로.
개보다 못한 신세가 된 오늘 날 남자들의 운명이 참으로 애달프다.

그러나 나에 관한 한, 그 건 모르는 소리다.
우린 떨어져 살아본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내는 신혼의 주말부부를 보면 은근히 부러워했고, "당신은 장기출장이나 해외연수도 안가느냐"고 은근히 구박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가끔 (신혼시절엔 아주, 대단히 자주) 부부싸움을 하고나면 별거를 생각한 적이 있다. 서로 떨어져 살며 이 사람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냥 의무감으로 사는 건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었다. 만일 우리 결혼생활이 단지 의무감 때문이라면 둘 다 모두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러나 다행히 별거를 하지 않고도 우린 화해를 했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늘 마음 한 켠엔 우리도 한번쯤 떨어져 살아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면서.(나는 아내가 원하는 건 모두 해주고싶었다)
결국 난 늦게나마 아내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고 더불어 나 역시 지난 삶을 차분히 돌아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하는 일은 지금까지 해 본 일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 이 나이에 안해본 일을 한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를 더욱 격동시키기도 한다.
나는 잘 할 것이다.
내 지내온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짐을 꾸려 이사 오던 날,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마냥 즐거워 하던 아내.
그러나 정작 헤어질때
웃음기 어린 농담 속
순간 흐려지던 눈빛이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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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7/31 16:35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국장님 글을 읽으면 늘 이 글을 읽어도 되는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냥 읽어도 늘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해요.
    인생의 1막이 그렇게 길다니..
    1막의 중반에 선 저는 어떻게 해야하나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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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족하지 아니한가

시사 2006/07/24 15:42
요즘 신문을 보면 ' 폭탄'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처음엔 '세금폭탄'이 나오더니 수해가 나자 '물폭탄',  파업사태가 나자 ' 파업폭탄'이란다.
이전 정부인 DJ때는 '대란'이라는 말이 홍수를 이뤘다. 날이면 날마다 대란,  파란, 파문,  파동, 불안, 우려, 긴장 등의 불길한 용어가 1면 탑을 장식했다. 그것도 모자라 툭하면 '이런(이따위) 나라'를 들먹이며 국가의 존재가치까지 부정하는 듯한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그 뒤엔 조국에 실망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만일 그때의 신문 보도들이 맞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망해도 한참 전에 망해있어야 할 것이다.(언론이 그만큼 한 덕에 이나마 아직 안 망한 것인가?)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 언론의 보도행태를 생각하면 지금 언론의 정부 비판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학생과 재야단체들이 언론자유를 피 토하듯 요구하던 시절, 그만큼 언론이 할말을 제대로 못하던 시절, 언론은 비판은 커녕 권력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거나 오히려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다. 지금은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긍정적인 평가는 없고(분명 그런 측면도 있을텐데), 온통 반대의 이유만 나열하지만, 당시엔 비판은 언감생심 찬양하기에 바빴다. 오직 일부 신문만이 용감했으나 그것도 요즘같은 직설적 비판은 어림 없고 대단히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방법을 썼다. 식자들이나 겨우 그 의미를 눈치 챌수 있을 정도였다.
독자들은 기사를 있는 그대로 보기 보다 행간의 의미를 살피기에 바빴으며 큰 기사보다는 1단짜리 기사에서 그 날의 의미를 찾았다. 중요한 기사는 결코 크게 보도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두환 군사정권이 민의에 굴복, 처음으로 정상적이고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언론은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감히 물태우로 조롱하며 비판의 강도를 높여가더니 마침내 자신들이 직접 대통령 만들기까지 나섰다.
김영삼 대통령은 사실상 언론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다. 특정 언론은 YS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엔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구 흔들어댔다.  언론의 난타에 YS는 임기말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자신의 힘을 확인한 언론은 이제 또 다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다. 이번엔 다른 신문사도 노골적으로 팔을 걷고 나서 보기에도 민망한 일이 속출한다. 그러나 엉뚱하게 DJ가 당선되자 언론은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혹시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대통령이라고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할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확인한 언론은 "정권은 유한하되 언론은 영원하다"며 이내 DJ 길들이기에 나선다. 이에 분노한 DJ는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들고 이는 그동안 비교적 정도를 걸어왔던 나머지 한 신문마저 돌이킬 수 없는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메이저 신문들은 줄기차게 DJ를 공격하며 후일을 기약했으나 DJ 후계자를 자처하는 노무현이 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자 도무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노무현같은 사람이 결코 대통령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될 수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니 이는 비정상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대통령을 거의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몰아가더니 대란 파란도 모차라 이젠 폭탄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뒤돌아 보라. 조금 부끄럽지 않은가.
바로 10여년전, 군사독재 시절엔 어떻게 했던가.
노무현 정권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또한 언론의 정부 비판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비판의 형식과 의도가 정당한가.
그만큼 대통령을 조롱하고 구박했으면 이제 족하지 않은가.
앞으론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보도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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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은 괴롭다

마음의 편린 2006/07/20 04:47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서 커서 어른이 돼야지" 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세상에 나가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이야기다.
듣고 보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후일 어떻게 기억될까. 아름다울까?

우리 어릴때는 달랏다. 어린 우리에게 비친 어른들은 대접받는 존재였다. 지금 아이들처럼 영악하지 못해서 대접받는 이면에 고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아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나이를 더 먹었다고 우기며 싸웠다. 청년기에는 주민증까지 확인해가며 서열을 따졌다. 생년이 같으면 달을 따졌고, 달까지 같으면 날을, 날까지 같으면 시간까지 따졌다. 그러고도 끝내 자기가 형이라는 게 입증 안되면 주민증 생년월일이 가짜 아니냐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당시엔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돌이 지나기까지 출생신고를 미루는 예가 많았고, 부모들이 사는데 바빠 신고 시한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신고지연에 따른 벌금을 물지 않으려 생일을 아예 몇 년씩 늦추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지만, 우리 어린 날의 추억은 아름답다.

동네 앞산 큰 바위 밑에 친구들과 굴을 파고 아지트를 만들던 일.
산에 꽃 따러 온 여자애들을 습격, 진달래를 뺏아 입가가 빨개지도록 먹던 일.
그 애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 밑 동네 애들과 싸움이 붙어 머리통이 깨진 일. (우린 산 위에서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잠시 물러났던 놈들은 솥뚜껑을 방패 삼아 물 밀듯 밀고 올라왔다. 우린 눈물을 머금고 작전상 후퇴, 사실은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정상을 정복한 적들이 거꾸로 우리에게 돌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중 유탄 하나가 내 머리통을....그때 내가 뭐라고 했던가. "내 부상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여자 애들이 우리 집에 떼로 몰려와 대문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던 일.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하다. 그들은 고무줄 놀이 때마다 남자 애들이 고무줄을 끊어 방해를 한다며 그 배후에 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단연코 그런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신사 아닌가. 그날 영문도 모르고 뒷곁에 숨어 벌벌 떤 생각을 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
군내 체육대회에 육상 대표로 출전했을때 내 첫사랑 그녀가 친구들과 몰려와 멋진 포즈로 응원해주던 일.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일.
그 때 봉선화를 독창했던 바로 그 녀, 내 첫 사랑.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지고는 한다.
그러나 너무 아름다운 추억이라서 어느 날 되레 괴로울 수도 있는가?
그렇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 일찍 알았다.

高3 때 였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의 공휴일.  하숙집 골목엔 하얀 햇살만이 가득,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나도 더위에 지쳐 방 한 구석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동요가 들려왔다. 라디오를 통해 아득히 들려오던 그 노래. 옛날 친구들과 많이 부르던 노래였다. 그 순간 두두둥 떨어지던 내 심장.
왜 그랬을까. 오히려 반갑기도 하련만 왜 그렇게 불안하고 불길하게 느껴졌을까.
그 순간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그 때 느꼈던 불안의 정체를 알게 됐다.
돌아갈수 없음!
그토록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 순간에야 퍼뜩 깨달았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추억이 쌓이지만, 힘들었던 순간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의 추억이 늘 나를 힘들게 한다.

기억하시라.

괴롭고 힘든 날 들은 차라리
세월이 흐르면 아름답다.
이제는 극복되어 다시 겪지 않아도 되므로.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은 괴롭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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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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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7/20 14:0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지금이라고 괴롭고 힘든 일이 없을까요..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이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지금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기가 가진 그릇만큼의 넉넉함..앎..고민..괴로움이 있는듯합니다.

    국장님 홈피보니 저도 리플족에서 벗어나서
    무언가 글을 쓰고 싶고.. 삶의 족적같은 것도 남기고 싶고
    그런 기분이 듭니다.

    함 도전해볼까요?

  2. 2006/07/21 07:3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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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속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07/18 20:34
언젠가 차를 몰고 가다가
어떤 노래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는 운전할 땐 대부분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데
그날은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잠겨 있었던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노래의 한 대목이 내 가슴을 찌르듯 들려온 것이다.

"사랑에 난 빠져버렸어"

이 나이에 생뚱맞게 왜 그 말이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일까.
저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겉잡을수 없이 마음이 저려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가사의 의미를 짚어가며 노래를 듣노라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 않고 '빠져 버렸다'고 했다.
마치 절규하듯이. 
특히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던 이기적인 사람이 마침내 사랑에 빠진 것을 두고
'또 다른 내가 온 것', 또는 '내 앞에 니가 온 것'이라고 말한 것은
너무도 아름답고 공감이 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노래는 대단히 흥겨운 노래라고 한다.
사실 가사를 보더라도
사랑의 설렘과 흥분이 잘 표현돼 있다.
그런데 나에겐 왜 그리 슬프게 들렸을까.

그와 나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인가.

나는 이 노래를 술자리에서 몇번인가 불러봤다.
그런데 부르다 보면 늘 감정이 격해져 엉망이 되고 만다.
정말 멋지게 부르고 싶은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지경이다.

소월은 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혼을 목 놓아 불렀지만
나는 그 노래를 통해 무엇을 부르려 했던 것일까.


<아름다운 구속>

오늘 하루 행복하길
언제나 아침에 눈뜨면 기도를 하게 돼
달아날까 두려운 행복앞에

널 만난건 행운이야
휴일에 해야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약속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조금씩 집앞에서 널 들여보내기가
힘겨워 지는 나를 어떡해
처음이야 내가 드디어 내가
사랑에 난 빠져 버렸어
혼자인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다른 내가 온거야 (내앞에 니가 온거야)

아름다운 구속인 걸
사랑은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살아 있는 오늘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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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애교 2006/07/19 15:1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는 "내앞에 니가 온거야"
    요 부분이 와 닿던대요~

  2. 허운주 2006/07/20 13:5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아름다운 구속.. 사랑을 상징하는 최대의 반어법이죠..
    어제 저녁에도 노래방에서 흥겹게 불렀는데..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가슴이 미어터지게 하는 노래라 생각하니..

    제가 좋아하는 구절은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거야'입니다

    그 사람은 곧 나일 수밖에 없다는 대단히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용^^

  3. 박소~ 2006/07/21 00:11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는 이 노래중에 "휴일에 해야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이부분이 가장 공감되는데요..ㅋㅋ
    주말에 근무하다가 가끔 토일 둘다 쉴때가 있는데,
    그럴때 되면 오늘은 뭘해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까..싶거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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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와 나

2006/07/18 20:34
나, 검도 공인 4단.
劍歷으로만 치면 7단도 더 된다.
論劍에선 이미 경지에 올랐다.
실전 능력?
그런 건 묻지 마라 (곤란하다)

내가 검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당시 학교 입구에 경찰서 무도관이 있었다.
어느 날,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괴상한 기합소리에 놀라
담장 너머로 몰래 (당시는 경찰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라서 경찰서 앞을 지나가기도 무서웠다)
무도장을 훕쳐보았다.

검푸른 도복에 투구와 갑옷을 떨쳐입고 칼을 뽑아든 사람들.
그들이 핏발 선 눈으로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격럴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어린 가슴이 콩딕콩닥 뛰었다.
검도인은 젓가락 하나로도 능히 수십명을 해치울 수 있다는데....
그 환상적 전설에 난 아예 뒤집어져 버렸다.
그러나 당시는 검도를 배울 곳도, 배울 여유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비로소 검도에 입문하게 됐다.
그것도 검도 동아리에 든 친구 녀석 때문에 얼떨결에...

나의 첫 경험은 처절햇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날마다 술에 절어 살던 나에게
선배들은 가혹했다.

석 달을 꼬박 죽도를 피로 물들여가며 기초훈련을 한 끝에
땀 냄새 지독한 호구를 '감격적으로' 입을 수 있었다.
아니, 호구 착용전,
정면머리 100번, 좌우머리 100번, 손목 100번, 허리 100번, 빠른머리 100번,
빠른머리 또 100번, 또 100번, 다시 또 100번......
서 있기도 힘들게 만든 뒤
"감사하라"며 호구 착용을 지시했다.

나는 이미 더 이상 버틸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왜 공격해 들어오지 않느냐"
불호령과 함께 선배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됐다.
실컷 맞았다.
호구를 벗고 그대로 도장 밖으로 나가 쓰러졌다.

온몸은 물벼락을 맞은 듯 땀에 젖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눈앞은 깜깜...별들이 무수히 떴다 사라졌다.
입에선 구리 냄새가 풀풀 났다.
(그래도 풀 향기는 좋았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나
"야, 칼이 되게 빠른데. 눈에 보이질 않아"
어쩌다 한번 칭찬에 속아 몇 달을 더 도장에 나갔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근 6개월 만에
"감히 누가 나를 가르치려 드는가"
나는 독행도의 길로 나섰다.

미야모도 무사시는 일본 전역을 돌며 도장 깨기에 나섰다지만
나는 아침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홀로 대적했다.
그런데 그게 글쎄,
검도였을까 목검 체조였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모든 게 시들.
칼을 잡아본 게 언제였나 싶을 때
나에게 인생의 위기가 왔다.

사나이 한 평생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해온 나다.
그런데 그걸 자신할 수 없게 됐다.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벌인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수 많은 동지 앞에서 눈물을 뿌렸다.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이 마음.
나부끼는 생명.
나는 본능적으로 검도 도장을 찾았다.
그리고
열사의 사막에 백골을 쪼이듯
회한 없이 검도에 몰두했다.

이제 15년.
거의 개근하다시피 도장을 다닌 지 7년 되던 해 4단이 됐다.
4단이면 사범 급.
더 이상 심사를 보아 무엇 하랴.
나는 영원한 4단이다.
(나는 4字가 좋다)

검도는 단순하다.
지극히 단순하다.

좋지 않은 머리를 굴리느라 피곤하신가.
칼을 들고 자신과 마주 서라.
단 칼에
나 아닌 나를 베어버릴 것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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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취미성

일상 속에서 2006/07/18 20:33

나는 참 대단하다.
아무리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도
집은 귀신같이 찾아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필름 끊겨도 집 찾아 가는 것?
그건 사실 웬만한 사람은 다 하는 것이다.

어제였다.
제주도 세미나에 갔다.
세미나 가서 그렇게 열심히 세미나 하는 거
나, 생전 처음 봤다.
무려 5시간 넘게 거품 물어가며 토론을 벌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어진 술자리도 뜨거웠다.
소주가 몇순배 도나 했더니
곧장 폭탄주로 바뀌었다.
2차, 3차서도 계속 폭탄주였다.

얼마나 마셨을까.
마지막에 4명이 남았던 것 같다.
그 후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 내 방이었다.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산 넘고 바다 건너 일산 우리 집으로 간 게 아니고
(그건 누구나 다 한다)
617호실.
난생 처음 간 숙소.
바로 그 곳에
난 정확하게 홀로 찾아간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워까지?

이만 하면 나,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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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마음의 편린 2006/07/18 20:32
나이 들어서도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70, 80이 되고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기업을 호령하는 걸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태 기회를 얻지 못하고도
여전히 이상이나 야망에 얽매어 있다면
우스운 일 아닐까.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아무런 계산 없이
'다만  해야 할 바'에 매진하는 것.
이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젊은이의 특권은 어쩌면 패배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자신의 능력 이상을 추구해야  하며
그래서 패배할 수 밖에 없어야 한다.
그는 비록 패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진보한다.

나이가 들면 분수를 지켜야 한다.
자기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 하고 만족해야 한다.
미련을 못버리고 끝내 싸움에 나서면
그는 패하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분수를 모르고 마침내 패배하는 젊은이
분수를 알고 물러나 자족하는 늙은이
이들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 삶은 지금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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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바람들에게 2006/06/29 15:47
살다보면 답답한 일도 많다.
세상 돌아가는 게 못마땅하고, 되는 일 없어 속 터지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나으련만,
누가 사심 없이 귀를 기울여 주겠는가.
어린 시절엔 하느님께, 때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공허한 독백일 뿐 .

오늘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말을 하고 싶다면,
그러면,
바람에게 말을 걸어보자.
걸림 없는 바람이 무엇인들 거르겠는가.
또 혹시 아는가.
이리 저리 떠돌며
온 천지에 내 마음 전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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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7/11 17: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제가 첫손님은 아닐듯.. 하지만 첫글 남깁니다.
    집들이 축하합니다.
    소녀적 감성은 여전하시군요.
    날선 검, 목숨을 내걸고 마시는 술, 그리고 시정잡배까지 많은 사람들의 치열하고 단단한 삶의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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