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이별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09/03 12:22

작은 키에 부리부리한 눈.
늘 무엇엔가 열중해 있으면서도
왠지 조금 불안해 보이는 눈빛.

내가 그와 가까와 진 것은
그나 나나 본래 업무에서 밀려나
제3의 부서에서 다시 만났을 때였다.
밀려난 사람들이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가 밀려난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고
그곳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고민했다.

마음으로야 그만 둬야 할 사람들이 우리가 아니었지만
현실이 어디 그러한가.
우리는 우리의 그 우울한 마음을
한잔 술과 노래로 달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노래방에서
준비 없는 이별, 바로 이 노래를 불렀다.
아니, 그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
가사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이 노래에서의 '그대'는
동료들일 수도,
이루지 못한 꿈일 수도,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IMF때.
그의 노래는 마치
우리도 준비되지 않은 채
이 모든 것들과
언제든 이별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 해서
더욱 절절하게 들렸다.

나는 그의 노래에 매료됐다.
그를 다시 보게 됐고
그의 가슴 속에 열정이
출구를 찾지 못한채 들끓고 있음을 느꼈다.
알고보니 그는 연세대학의 노래패 출신.

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갓다.
시간이 흘러도 원직 복귀가 안되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자해 하듯이 군소 회사로 갓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열심히 일했다.
결국 지금은,
그의 신념과는 논조가 다르지만
가장 힘이 센(?) 회사로 스카우트 돼 갔다.

나는 그가 그 회사로 간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젠 똑같은 회사들.
그가 그곳에서라도
그저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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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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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떡궁합

시사 2006/08/26 14:54
매조히즘 정부에 새디스트 언론.
요즘 정부와 언론의 관계를 보면 그렇게 찰떡궁합일 수가 없다.
정부는 마치 언론의 매질을 일부러 바라는 듯 하기 일쑤이고
언론은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말꼬리 까지 물어가며 매질한다.
둘다 가히 변태적이다.

말 많은 코드인사만 보자
어느 나라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코드인사 안하는 데가 있던가.
뜻이 같은 사람들을 놔두고 누구하고 일을 하란 말인가.
정권을 잡기 위해 그렇게 애쓴 사람들을 집권 뒤 내 몰라라 하면 그게 사람인가.
그게 바로 토사구팽.
토사구팽이란 말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예를 못봤다.

그러나 코드 인사를 하더라도 눈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기용하는 사람의 규모나 수준이 웬만해야 하고  
배 아파 할 사람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남이사 "
기를 쓰고 매질을 자청한다.

언론 또한 막무가내.
떴다 하면 "낙하산"
인선의 적합성이나 논란의 타당성은 뒷전
코드 인사 자체만으로
바로 패고 엎어 패고
이 잡듯이 뒤집어 패고
어제 팬 곳 골라 패며
꺼억 꺼억~ 절정의 거품을 문다

정말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둘이서야 치고 차면서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어쩌나.

"그래, 둘이서 잘해봐라"
정부로부터도,언론으로부터도
국민들이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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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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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08/26 13:22

If you going to sanfrans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이 노래를 듣노라면 내 마음은 곧바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간다.

그곳 공항애서
막 도착한 비행기의 트랩을
머리에 꽃을 꽂은 채
손을 흔들며 내려 오는 나.

들을때 마다 가슴 설레던
미지의,
꿈과 환상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마도 내가 중학교 1,2학년때?
누나가 고 2,3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 때는 어렵던 시절이다.
우리 부모님도 먹고 살기 위해 새벽부터 일을 나가셔야 했다.
그러면 누나가 밥이며 빨래며 살림을 도맡아 했다.
누나 두 살 밑에 또 다른 누나가 있었고
그 두 살 밑으로 내가 있었지만
누구도, 특히 나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누나가 청소한다며 좀 비켜달라고 해도
이리 뒹굴, 잠시 몸을 돌려줬을 뿐이다.
왜?
나는 아들이니까.

그런데도 누나는 불평은 커녕
일을 하면서도 늘 흥얼흥얼,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는 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노래다.

이 노래는 본래 1960년대 히피들의 노래라고 한다.
당시 반전-평화를 위한 집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는데
이를 기념해 만든 곡이 바로 이 노래란다.

나는 이 노래를 배우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데 40여년을 두고
잊을만 하면 이 노래와 부딪치곤 한다,
얼마전 또,
길을 가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됐다.

그 순간, 불 같이 강렬하게
다시 이 노래를 배우고 싶어졌다.

왜 그랬을까.
내가 당시 사추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자유와 사랑, 그리고 평화!
히피들의 갈망과 좌절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노래의 샌프란시스코는 이제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가슴 부풀게 하는 꿈의 도시도 아니다.

끝내 갈 수 없는 곳,
가서는 안되는 곳.
이룰 수 없는 꿈.
미안함, 고마움, 안타까움이 뒤섞인
누님의 기억.

그래서 이젠
가슴이 벅차기 보다
오히려 허전한가.

누나는 누구나 시집가서 잘 살 거라고 했다.
그런데 별로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힘든 일을 하며 어렵게 산다.
그런 누나가 밉다.
이 노래가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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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8/28 16:29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제가 기억하는 이 노래는..
    예전에 무슨 드라마 황신혜가 결혼후 사랑을 느끼게 되는 드라마..
    참 유동근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그때부터 한국남자들도 짙은 파란색 와이셔츠를 입게되었죠.

    저도 가끔 그 드라마를 봤지만 아줌마가 아니었던 탓인지 그렇게 깊은 공감은 없었어요. 그때 그 드라마 주제곡으로 IOU가 빅히트를 쳤는데 저는 왠지 그 드라마가 끝날무렵 나온 이 음악이 기억에 많이 남더군요.

    그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샌프란시스코 항공권을 줬던가..
    떠나지 않고 끝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였을거예요. 암튼 저도 그 이후론 이상하게 샌프란시스코에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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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 되어

노래와 사연/그냥 좋은 노래 2006/08/16 17:18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뮬을 바라보며 아~
음,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에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 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곁으로 간다

산등성이에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 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어느새 내 매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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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난, 나에게 넌

노래와 사연/그냥 좋은 노래 2006/08/16 17:10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나에게 넌 초록의 슬픈 노래로
내 작은 가슴 속에 이렇게 남아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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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게벼

일상 속에서 2006/08/10 15:16
처음 주말부부가 됐을땐 솔직히
묘한 기대감이 있었다.
혼자 살아본 게,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외로울 거라고?
천만에!
초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하기까지 줄곧 혼자 살아온 나다.

혼자 밥 해먹는거?
그것도 별것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보이스카우트로 야영생활에 이골이 난 나다.
된장찌게가 내 주특기라는거 아닌가.

일종의 해방감에 한껏 부풀었다.
자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낭만은 잠깐이고 현실이 더럽게 다가왔다.
한달도 안돼
오피스텔이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밥, 잘 해먹었다.
전기밥솥에 쌀을 반쯤 넣고 물을 부은 다음
30분간 불린 뒤 스위치를 내린다.
밥이 되면 락엔락 그릇에 담아 냉동고에 넣어두고
끼니때 마다 하나씩 꺼내 해동시켜 먹는다.

기본 반찬은 냉장고에 가득하고
물만 부어 끓이면 바로 먹을 수 있는는 국도 가지가지 사다놓았다.
바쁘거나 특식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라면도 종류별로 모조리 준비해뒀다
영양실조에 걸릴세라 (걱정도 많다)
물만두에 너비아니에 불갈비까지 냉장고에 넣어뒀다.
심심하면 가끔 김치찌게, 된장찌게도 해먹는다.
맛, 죽인다.

설겆이는 처음부터 조금 문제였다.
무엇보다 음식 찌꺼기가 골치였다.
그냥 버리면 싱크대 배수구가 막힐 것 같고
모아 두자니 냄새가 났다.
그러나 방법이 있지.
찌꺼기를 남기지 않으면 된다.
모조리 먹어 치웠다.
(설겆이도 별거 아니네 뭐.)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밥 먹을때 마다 모조리 먹어치워야 한다는 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나중엔 소화가 안되고
음식을 보면 지레 겁이 나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설겆이 거리를 줄였는데도
설겆이는 설겆이.
손에 자주 물을 묻히다 보니
내 손이 불쌍했다.
음식 냄새가 밴, 젖은 손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 한심하고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뭘하고 있는 거지?
살자고 매번 이렇게 먹어야 하나?
안 먹으면 죽는,
나도 역시 먹어야 사는 짐승이야?
짐승.....!


그 뿐이 아니었다.
처음엔 밤마다 술을 마셧다.
먹자는 사람도 있고, 거절할 수 없는 자리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본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화에 필요해서 술을 마실 뿐
절대로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시간이 가면서 술 자리를 피했다.
먹자는 사람도 뜸해졌다.
그러니 일 끝나면 쪼르르
숙소로 돌아와 긴긴밤을 혼자 맞는다.
누가 나가지 말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혼자 방안에서 지내려니
갑자기 감옥처럼 느껴졌다.

이게 정말 뭐야.
혼자 산다는 게 이런 것이었어?

잠은 안 오고
식욕도 없고
체중도 줄어들고
정말 당황스럽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곧 다시 적응할 것이다.
그 때는
정말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 아닌지
은근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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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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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창현 2006/08/11 19:1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푸하하하~~~!!!

    혼자사는 유부남의 처량함과 고독, 슬픔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느껴가고 계시는군요.
    서울서 절 맨날 놀리시더니...

    "먹는게 뭐가 중요하냐?"
    "술 먹고 밥 먹으러 택시타고 어딜 가는 네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넌 왜케 한끼 먹는 것에 집착하느냐? 대충 먹으면 되지."

    등등의 말로 서슴없이 저의 가슴에 대못을 참으로 모질게도 박으셨죠? ㅋㅋㅋ

    저도 서울생활 처음에는 '이래도 한끼 저래도 한끼'라고 생각했죠.
    김치찌개, 김밥, 설렁탕, 해장국, 순두부, 초밥 등등 멀리가기 귀찮아서 주변 가까운데 가서 한끼를 속인 적이 수도 없이 많았죠.

    배는 고픈데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고, 차라리 배나 고프지 말던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파지는 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짜증나던지
    '넌 왜케 구질구질하게 때마다 배가 고픈거냐, 하루쯤 배 안고프면 안되겠니?'

    그러나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식욕, 의욕, 축나는 몸, 불면증 등을 겪으면서 생각했죠.

    '한끼를 먹어도 이왕이면 좋은 음식을 먹자. 먹어야 살지. 남이 만들었건 내가 만들었건 정성이 가득 담긴 훌륭한 음식으로 내 몸과 마음을 위로하자. 운동도 열심히 하자.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ㅋㅋㅋ'

    결국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과 즐겁게 먹는 게 혼자 사는 유부남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자신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아니면 친구와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는 것은 결코 '짐승스럽거나, 부끄럽거나, 슬픈일이 아니고 최고의 즐거움이다'라고 생각했죠.

    제가 장담하건데 아마도 부국장님께서도 조만간 오피스텔에서의 '스스로 식사시대'를 마감하고, 한마리의 배고픈 하이에나가 돼서 내 입맛에 꼭 맞는 음식점을 찾아 대전의 거리를 헤매실 것입니다.

    그래서 90% 정도만 입에 맞는 음식점을 찾으시면 "우와 최고다!!"라고 자위하면서 질릴 때까지 다니시다가, 질리면 또 다른 곳으로 단골을 바꾸는 생활이 시작될 것입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얘기해서 오기로라도 대전 생활을 청산하실 때까지 음식을 손수 만들어 드실지도 모르겠지만...ㅋㅋㅋ)

    하지만 결코 슬프거나 노여워하지 마세요.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가 아닌가요. 배고프면 슬슬 신경질나고 배부르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행복해지면서 실실 웃음이 나는...

    한끼라도 굶어보세요 배가 얼마나 고픈지

    ㅋㅋㅋ 그래서 오늘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전 행복합니다.






  2. 허운주 2006/08/18 16:4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도 푸하하하~
    국장님.. 이렇게 살고 계셨군요. ^^
    조차장 기~인 댓글도 넘 잼있습니다.

    술.. 정말 이야기하려고 드신거였어요?
    음~ 그랬구나. 저희랑 이야기 함 해볼라고..

    저는 중국 잘 다녀왔습니다.
    모처럼 자연인으로 돌아가 대국적 기질을 양껏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국장께서 배타고 간다고 한 염려는 정말 기우였습니다.
    배에서도 육지에서도 모두 잼있었습니다.

    부럽져?
    블로그보고 저도 국장께 먼가 마음을 달래드릴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아침 6시에 밥먹고 6시30분부터 계속 버스타고
    밤 8-9시게 호텔에 도착하고 산에 오르고 머 그런 시간을 계속 보내다보니
    살 시간이 없었어요. 아쉬움 ㅜㅜ

    암튼 국장께서 핸드폰 고리를 만지면서 서울을 후배들을 그리워할 생각을 하니
    그 글을 읽고 마음이 많이 짠 했습니다.
    그치만 저희도 국장이 참 그립습니다.
    돌아와보니 로그인 되어있지 않은 국장 이름을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면 늘 그자리에 계신 줄 알았는데..
    충정로 계실때도 마음만 먹으면 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을 먹고 또 먹고 기차를 타야 한다 생각하니
    한숨이 납니다.

    참 주부9단이 저의 충고..
    마트에 가면 과일을 담는 봉투 있잖아요. 그 사이즈 봉투에 음식쓰레기를 비우시고요.
    꼭 반드시 빨래집게로 봉하셔야 합니다.
    그럼 냄새 걱정도 없고 이틀에 한번쯤 비워도 되고 밥 먹을 때 스트레스 안받아도 되니
    여러모로 좋습니다. 꼭 함 해보세요. 강추!

    중국에 있을때 지인들에게 편지라도 하고 싶었지만
    편지보다 제가 먼저 한국에 도착할 생각을 하니
    맥이 풀려 쓰기 싫어지더라고요.

    잘 지내시죠?
    건강하시고요. 휴가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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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나

일상 속에서 2006/08/09 15:39

남의 얼굴을 들여다 본 일이 있는가.
남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들여다 보는 건 사실 무례한 짓. (싸움 난다.)
그러면 가까운 사람, 당신의 아내나 자식의 얼굴은 가만히 들여다 본일이 있는가.
그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들이 갓난애였을 땐 신기한 마음에 자주 들여다 본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아이들 얼굴도, 심지어 아내의 얼굴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어느날, 유원지에서 인파에 밀려 헤어진 아내나 아이들을 멀리서 발견하곤
참으로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가.
가족이 그 정도면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출퇴근 시간, 정해진 시간에 늘 함께 차를 타면서도
그들이 누구인지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이 있던가.
차에 탓다 하면 곧바로 눈을 감고 모자란 잠을 청하거나
영어 회화 테이프나 노래를 듣기 일쑤였다.
차라리 회사 동료들은 늘 함께 일해서 그런지 조금 낫다.
그런데 그 동료들 조차 옆에, 또는 앞에 있어도 감감
차에서 내릴 때에야 비로소 알아보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잦던가.

서울 생활이란 게 그렇게 바빴다.
바쁜 것을 넘어 서울은
무관심이 습관화된 도시 였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다르다.
우선 지하철에 타면 대부분 자리가 있고
그래서 여유 있게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게 된다.
참, 그러고 보니 사람들 얼굴이 이렇게 다양하구나.
잘 생긴 사람도, 못난 사람도 많구나.
저 사람은 뭐가 그리 심각한 것일까.
저 아가씨는 오늘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나?

가끔은 이들의 굼뜬 행동이
아직은 여전히 바쁜 내 발길에 걸리적거려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다시 사람을 본다.
그것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다.
사람을 안다는 건 실망의 시작일 수도 있으므로

도시에 물들어 버린 나.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변해갈지
두근 두근
아직은 기대보다 두려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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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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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니컬 허 2006/08/23 20:47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그게 여유인건진 몰겠지만...전 사람 얼굴 들여다보기가 취미인데요..ㅋㅋ
    저사람 얼굴에 점이 몇개인가 세고 있을 정도로..
    어릴적엔 슬픈 드라마 보고 눈물 지으시는 어머니 얼굴 빤히 들여다 보다
    무지 면박 받았던 적도 있고..
    이제 가족들은 제가 보거나 말거나..신경도 안쓰고 하던일 굳굳히...
    아이들도 이미 적응.
    역쉬,,난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고 있는 거야..크크..

    다시 찾은 솔로 생활..
    일상의 사소함에 지치지 마시고
    멋지게 즐겨 보세요..
    (남은 음식은 가차없이 버리시고..설겆이는 한두끼 정도는 미뤘다 하셔도 되잖아요~
    음..냄새는..싱크대 뚜껑을 맞추세요! 냄새 안 새어나오게 꼭 맞도록.)

    이런 혼자만의 여유있는 시간이 전 부럽기만 한걸요..

    유성온천까지 코스로 넣어서 함 초대 해주심,,정연 소연 등과 위문공연 갈게요~

    에구 배고파라..이만 전 퇴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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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시사 2006/08/08 15:37
요즘 정부와 언론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관이다.
이 같은 싸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예 서로 망가지기를 작정한 것같은 모습을 보면
이젠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번 싸움은 언론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조선일보는 28일자 1면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울 '계륵 대통령' 이라며 조롱했다.
여당에서조차 버릴 수도, 함께 갈수도 없는 처치곤란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남은 임기 1년반을 어쩌냐며 여당이 한숨만 쉬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칼럼을 통해 현 정권의 심사에 불을 질렀다.
칼럼은 현 정권을 '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정부' 라고 단정했다.
국민 재산을 축내는 '도둑 정치'를 하고 있으며
'혈세를 쳐들여 소도 웃을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더 망하지 않으면 천운'이라고 까지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했다.
두 신문의 행태가 '마약'의 해악성과 심각성을 연상시킨다며
'형식만 해설이나 칼럼일뿐 침뱉기' 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증오 때문에 나라의 질서와 체면까지 구기지 말라"며
이례적으로 공식 입장까지 발표했다.
그러더니 두 신문에 대해 취재 협조를 거부하고
신문사 공익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철회시켰다.

보라!
해도 해도 너무 하지 않은가.
같은 말을 해도 어쩌면 저리 무식하고 모질 수가 있나.
저것이 대 신문사의 글이 정녕  맞는가.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글을 쓰는가.
진정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가?
아니다.
저건 정부에게 잘해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망해 없어지기를 바라마지 않는
지독한 증오 일 뿐이다.

정부는 또 뭔가.
언제까지 언론과 치졸한 싸움만 하고 있을 건가.
그 소아병적인 태도에
그저 어이가 없다.

정말 국민만 불쌍하다.
저 더럽고 유치한 싸움을
누가 끝장낼 수 있나.

그게 누구라도
나는 그를 지지하겠다.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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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란

마음의 편린 2006/08/06 14:49
선물이란 무엇일까.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는 것?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
누군가로부터의 부담을 털어내는 것?

나는 본래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주의이다.
선물과는 조금 다르지만
오래전 이미
나는 남의 도움도 받지도 주지도 말자고 작정한 바 있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함이 피곤하고
도움을 주면 도움을 줬다고 은근히 생색내려는 내 속 마음이 싫었다.
만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일이 있다면
돕는다는 의식 자체가 없었거나  적어도 도운 일 자체를 잊으려 애 썼을 것이다.
부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이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끔 이런 나의 태도가  이기주의 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기주의!
어렸을땐 대단히 부정적인 의미로 알았던 이말을
사실 난 별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오히려 모든 인간이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초년 시절 심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월남전의 영웅 강재구 소령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훈련중 잘못 투척된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정부와 언론은 그를 영웅이라며 격찬 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영웅인가?

나는 그가 영웅이라기 보다 철저한 이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만일 그가 죽지 않고 부하들이 몰살당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면
그는 당장 중벌을 받고 군인으로서의 미래가 끝장나는 것은 물론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아마 죽음보다 더한 지옥이지 않을까.
그 때문에 그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게 아닐까.

물론 그 순간 그가 그런 계산을 했을리는 없다.
그러나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존재, 그의 전존재가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죽음을 명령한 것 아닐까.

그의 희생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결국 그는 부하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음을 결단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기주의다.
더우기 (본인은 의식조차 못했다 하더라도)  치밀한 계산 끝의 행동이므로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닌 철저한 이기주의다.

이 같은 나의 주장에 친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말 냉혹한 이기주의라고.
그러나 문제는 이기주의가 아니다.
내가 진정 누구이며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
이것이 핵심이 아닐까.

이러다보니
나는 그동안 남에게 선물을 준 적도, 받은 적도 별로 없다.
어쩌다 받으면 내 마음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선물의 의미를 그저 의례적인 것으로 축소했다.
줄 때는 그도 나도 그 사실을 빨리 잊도록
되도록 빨리 소모되는 품목을 골랐다.

이런 나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이란
가족끼리 주고받은 것을 빼면 별로 없다.
대학 졸업 때 여자친구로부터 받은 넥타이 정도?
그것도 '뜻밖의 선물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여자의  넥타이 선물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데
그녀와 나는 전혀 그럴만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좀 의아했는데
역시나 우린 그 이후 만난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요즘 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서울을 떠나올 때
회사 후배들로부터 휴대폰 줄을 선물받았다.
앙증맞은 골드키 두개가 달린 까만 색 줄.
늘 나와 함께 하는 휴대폰에 직접 매어줬다.
그래선지 쓸 때마다 그들이 기억나고
볼 때마다 그 노란색 만큼이나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이다.

아, 이런 선물도 있었구나.
부담은 전혀 없고
따뜻한 정만이 느껴지는
이런 선물도 있구나.

그런 선물이 가능한 것은
아마도 우리가 의존적인 관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모든 일을 그렇게 무겁게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남을 돕는 것과 남에게 도움 받는 것도
꼭 그렇게 진지해져야 하나.
그저 가볍게 살 수는 없나.

이런 저런 생각 없이
마냥 마음이 훈훈해 지는, 휴대폰 줄 같은 선물.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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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고을 대전이 이럴 수가!

일상 속에서 2006/08/03 09:37
대전에 와서 지하철을 타보고는
그 쾌적한 환경에 너무 기분이 좋아 마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개통한지 불과 한달도 안돼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데다
다른 곳에서 시향착오를 다 겪은 뒤에 지어서 그런지
스크린 도어며 에스컬레이터며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날 보고 자리 양보하는 놈이 없다.
누가 양보해준다 해도 앉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서울선 보통 한시간 이상씩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그 오랜 시간을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피곤한 시간에 타고 다니려니
사실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서는 나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자주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화가 났었다.
나는 아직 젊은데...,아직 힘이 넘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눈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만큼 지치고 나이 들어 보이는가.

그래도 대학생이 양보를 하면 조금 낫다.
속으로야 "야,야,야, 너나 앉아 가" 하면서도
너무 사양하면 또 그게 이상해 보일까봐 앉아 주었다.
그런데 중년 아줌마들까지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아줌마가....취했나?
정말 충격이었다.
다음무턴 나이 든 사람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리가 없으면 아예 먼산만 바라보며 다녔다.

그런데,
여기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다.
대학생은, 내가 마음만은 아직도 20대 라고 생각하니,  내버려 두고
새파란 고등학생조차 멀뚱멀뚱.
내가 서 있는 걸 보고도 자리 양보할 생각을 않는다.
심지어 자리가 나면 먼저 달려가서 차지하기 바쁘다.

이럴 수가!
여기가 양반고을 맞나?
여기선 회사까지 10분도 채 안걸린다.
그래서 더더욱 앉을 생각이 없다.
그런데도 양보 의식 없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이른바 양반고을 하고도 대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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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8/07 12:0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푸하하하 그 중년아주머니들 정말 웃겨요. 하하하..
    멀 그리 심각하게 장문의 글까지 남기십니까.
    버스타고 10분거리면 고민하지 마시고 흥분도 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걸어다니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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