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은 괴롭다

마음의 편린 2006/07/20 04:47

요즘 아이들은 어른이 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서 커서 어른이 돼야지" 라고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 하고, 세상에 나가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이야기다.
듣고 보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후일 어떻게 기억될까. 아름다울까?

우리 어릴때는 달랏다. 어린 우리에게 비친 어른들은 대접받는 존재였다. 지금 아이들처럼 영악하지 못해서 대접받는 이면에 고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아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나이를 더 먹었다고 우기며 싸웠다. 청년기에는 주민증까지 확인해가며 서열을 따졌다. 생년이 같으면 달을 따졌고, 달까지 같으면 날을, 날까지 같으면 시간까지 따졌다. 그러고도 끝내 자기가 형이라는 게 입증 안되면 주민증 생년월일이 가짜 아니냐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당시엔 유아 사망률이 높아서 돌이 지나기까지 출생신고를 미루는 예가 많았고, 부모들이 사는데 바빠 신고 시한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면 신고지연에 따른 벌금을 물지 않으려 생일을 아예 몇 년씩 늦추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지만, 우리 어린 날의 추억은 아름답다.

동네 앞산 큰 바위 밑에 친구들과 굴을 파고 아지트를 만들던 일.
산에 꽃 따러 온 여자애들을 습격, 진달래를 뺏아 입가가 빨개지도록 먹던 일.
그 애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 밑 동네 애들과 싸움이 붙어 머리통이 깨진 일. (우린 산 위에서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잠시 물러났던 놈들은 솥뚜껑을 방패 삼아 물 밀듯 밀고 올라왔다. 우린 눈물을 머금고 작전상 후퇴, 사실은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정상을 정복한 적들이 거꾸로 우리에게 돌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중 유탄 하나가 내 머리통을....그때 내가 뭐라고 했던가. "내 부상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여자 애들이 우리 집에 떼로 몰려와 대문에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던 일.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하다. 그들은 고무줄 놀이 때마다 남자 애들이 고무줄을 끊어 방해를 한다며 그 배후에 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단연코 그런 적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신사 아닌가. 그날 영문도 모르고 뒷곁에 숨어 벌벌 떤 생각을 하면 지금도 화가 치민다 )
군내 체육대회에 육상 대표로 출전했을때 내 첫사랑 그녀가 친구들과 몰려와 멋진 포즈로 응원해주던 일.
합창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일.
그 때 봉선화를 독창했던 바로 그 녀, 내 첫 사랑.

생각하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지고는 한다.
그러나 너무 아름다운 추억이라서 어느 날 되레 괴로울 수도 있는가?
그렇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 일찍 알았다.

高3 때 였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어느 여름날의 공휴일.  하숙집 골목엔 하얀 햇살만이 가득,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나도 더위에 지쳐 방 한 구석에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동요가 들려왔다. 라디오를 통해 아득히 들려오던 그 노래. 옛날 친구들과 많이 부르던 노래였다. 그 순간 두두둥 떨어지던 내 심장.
왜 그랬을까. 오히려 반갑기도 하련만 왜 그렇게 불안하고 불길하게 느껴졌을까.
그 순간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차 나이가 들면서 그 때 느꼈던 불안의 정체를 알게 됐다.
돌아갈수 없음!
그토록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 순간에야 퍼뜩 깨달았던 것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추억이 쌓이지만, 힘들었던 순간보다 행복했던 순간들의 추억이 늘 나를 힘들게 한다.

기억하시라.

괴롭고 힘든 날 들은 차라리
세월이 흐르면 아름답다.
이제는 극복되어 다시 겪지 않아도 되므로.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은 괴롭다.
이제는 가고 싶어도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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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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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7/20 14:0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지금이라고 괴롭고 힘든 일이 없을까요..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이 괴로움으로 느껴지는 지금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자기가 가진 그릇만큼의 넉넉함..앎..고민..괴로움이 있는듯합니다.

    국장님 홈피보니 저도 리플족에서 벗어나서
    무언가 글을 쓰고 싶고.. 삶의 족적같은 것도 남기고 싶고
    그런 기분이 듭니다.

    함 도전해볼까요?

  2. 2006/07/21 07:3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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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속

노래와 사연/사연 있는 노래 2006/07/18 20:34
언젠가 차를 몰고 가다가
어떤 노래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는 운전할 땐 대부분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데
그날은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잠겨 있었던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노래의 한 대목이 내 가슴을 찌르듯 들려온 것이다.

"사랑에 난 빠져버렸어"

이 나이에 생뚱맞게 왜 그 말이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일까.
저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겉잡을수 없이 마음이 저려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가사의 의미를 짚어가며 노래를 듣노라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고 하지 않고 '빠져 버렸다'고 했다.
마치 절규하듯이. 
특히 자기밖에 사랑할 줄 모르던 이기적인 사람이 마침내 사랑에 빠진 것을 두고
'또 다른 내가 온 것', 또는 '내 앞에 니가 온 것'이라고 말한 것은
너무도 아름답고 공감이 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노래는 대단히 흥겨운 노래라고 한다.
사실 가사를 보더라도
사랑의 설렘과 흥분이 잘 표현돼 있다.
그런데 나에겐 왜 그리 슬프게 들렸을까.

그와 나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인가.

나는 이 노래를 술자리에서 몇번인가 불러봤다.
그런데 부르다 보면 늘 감정이 격해져 엉망이 되고 만다.
정말 멋지게 부르고 싶은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지경이다.

소월은 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혼을 목 놓아 불렀지만
나는 그 노래를 통해 무엇을 부르려 했던 것일까.


<아름다운 구속>

오늘 하루 행복하길
언제나 아침에 눈뜨면 기도를 하게 돼
달아날까 두려운 행복앞에

널 만난건 행운이야
휴일에 해야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약속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조금씩 집앞에서 널 들여보내기가
힘겨워 지는 나를 어떡해
처음이야 내가 드디어 내가
사랑에 난 빠져 버렸어
혼자인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다른 내가 온거야 (내앞에 니가 온거야)

아름다운 구속인 걸
사랑은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살아 있는 오늘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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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송애교 2006/07/19 15:1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는 "내앞에 니가 온거야"
    요 부분이 와 닿던대요~

  2. 허운주 2006/07/20 13:5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아름다운 구속.. 사랑을 상징하는 최대의 반어법이죠..
    어제 저녁에도 노래방에서 흥겹게 불렀는데..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가슴이 미어터지게 하는 노래라 생각하니..

    제가 좋아하는 구절은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거야'입니다

    그 사람은 곧 나일 수밖에 없다는 대단히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용^^

  3. 박소~ 2006/07/21 00:11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저는 이 노래중에 "휴일에 해야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이부분이 가장 공감되는데요..ㅋㅋ
    주말에 근무하다가 가끔 토일 둘다 쉴때가 있는데,
    그럴때 되면 오늘은 뭘해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까..싶거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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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와 나

2006/07/18 20:34
나, 검도 공인 4단.
劍歷으로만 치면 7단도 더 된다.
論劍에선 이미 경지에 올랐다.
실전 능력?
그런 건 묻지 마라 (곤란하다)

내가 검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당시 학교 입구에 경찰서 무도관이 있었다.
어느 날,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괴상한 기합소리에 놀라
담장 너머로 몰래 (당시는 경찰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라서 경찰서 앞을 지나가기도 무서웠다)
무도장을 훕쳐보았다.

검푸른 도복에 투구와 갑옷을 떨쳐입고 칼을 뽑아든 사람들.
그들이 핏발 선 눈으로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격럴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어린 가슴이 콩딕콩닥 뛰었다.
검도인은 젓가락 하나로도 능히 수십명을 해치울 수 있다는데....
그 환상적 전설에 난 아예 뒤집어져 버렸다.
그러나 당시는 검도를 배울 곳도, 배울 여유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비로소 검도에 입문하게 됐다.
그것도 검도 동아리에 든 친구 녀석 때문에 얼떨결에...

나의 첫 경험은 처절햇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날마다 술에 절어 살던 나에게
선배들은 가혹했다.

석 달을 꼬박 죽도를 피로 물들여가며 기초훈련을 한 끝에
땀 냄새 지독한 호구를 '감격적으로' 입을 수 있었다.
아니, 호구 착용전,
정면머리 100번, 좌우머리 100번, 손목 100번, 허리 100번, 빠른머리 100번,
빠른머리 또 100번, 또 100번, 다시 또 100번......
서 있기도 힘들게 만든 뒤
"감사하라"며 호구 착용을 지시했다.

나는 이미 더 이상 버틸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왜 공격해 들어오지 않느냐"
불호령과 함께 선배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됐다.
실컷 맞았다.
호구를 벗고 그대로 도장 밖으로 나가 쓰러졌다.

온몸은 물벼락을 맞은 듯 땀에 젖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눈앞은 깜깜...별들이 무수히 떴다 사라졌다.
입에선 구리 냄새가 풀풀 났다.
(그래도 풀 향기는 좋았다.)

'이런 식으로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나
"야, 칼이 되게 빠른데. 눈에 보이질 않아"
어쩌다 한번 칭찬에 속아 몇 달을 더 도장에 나갔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았다.
근 6개월 만에
"감히 누가 나를 가르치려 드는가"
나는 독행도의 길로 나섰다.

미야모도 무사시는 일본 전역을 돌며 도장 깨기에 나섰다지만
나는 아침마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홀로 대적했다.
그런데 그게 글쎄,
검도였을까 목검 체조였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모든 게 시들.
칼을 잡아본 게 언제였나 싶을 때
나에게 인생의 위기가 왔다.

사나이 한 평생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해온 나다.
그런데 그걸 자신할 수 없게 됐다.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벌인 싸움에서 패하고 말았다.
수 많은 동지 앞에서 눈물을 뿌렸다.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이 마음.
나부끼는 생명.
나는 본능적으로 검도 도장을 찾았다.
그리고
열사의 사막에 백골을 쪼이듯
회한 없이 검도에 몰두했다.

이제 15년.
거의 개근하다시피 도장을 다닌 지 7년 되던 해 4단이 됐다.
4단이면 사범 급.
더 이상 심사를 보아 무엇 하랴.
나는 영원한 4단이다.
(나는 4字가 좋다)

검도는 단순하다.
지극히 단순하다.

좋지 않은 머리를 굴리느라 피곤하신가.
칼을 들고 자신과 마주 서라.
단 칼에
나 아닌 나를 베어버릴 것인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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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취미성

일상 속에서 2006/07/18 20:33

나는 참 대단하다.
아무리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도
집은 귀신같이 찾아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필름 끊겨도 집 찾아 가는 것?
그건 사실 웬만한 사람은 다 하는 것이다.

어제였다.
제주도 세미나에 갔다.
세미나 가서 그렇게 열심히 세미나 하는 거
나, 생전 처음 봤다.
무려 5시간 넘게 거품 물어가며 토론을 벌였다.

그래서였을까.
이어진 술자리도 뜨거웠다.
소주가 몇순배 도나 했더니
곧장 폭탄주로 바뀌었다.
2차, 3차서도 계속 폭탄주였다.

얼마나 마셨을까.
마지막에 4명이 남았던 것 같다.
그 후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니
호텔, 내 방이었다.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산 넘고 바다 건너 일산 우리 집으로 간 게 아니고
(그건 누구나 다 한다)
617호실.
난생 처음 간 숙소.
바로 그 곳에
난 정확하게 홀로 찾아간 것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 샤워까지?

이만 하면 나,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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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마음의 편린 2006/07/18 20:32
나이 들어서도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70, 80이 되고도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기업을 호령하는 걸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태 기회를 얻지 못하고도
여전히 이상이나 야망에 얽매어 있다면
우스운 일 아닐까.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아무런 계산 없이
'다만  해야 할 바'에 매진하는 것.
이는 젊은이들의 몫이다.

젊은이의 특권은 어쩌면 패배하는 것이다.
젊은이는 자신의 능력 이상을 추구해야  하며
그래서 패배할 수 밖에 없어야 한다.
그는 비록 패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진보한다.

나이가 들면 분수를 지켜야 한다.
자기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 하고 만족해야 한다.
미련을 못버리고 끝내 싸움에 나서면
그는 패하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분수를 모르고 마침내 패배하는 젊은이
분수를 알고 물러나 자족하는 늙은이
이들은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 삶은 지금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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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바람들에게 2006/06/29 15:47
살다보면 답답한 일도 많다.
세상 돌아가는 게 못마땅하고, 되는 일 없어 속 터지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나으련만,
누가 사심 없이 귀를 기울여 주겠는가.
어린 시절엔 하느님께, 때론 나 자신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공허한 독백일 뿐 .

오늘 누군가에게 미치도록 말을 하고 싶다면,
그러면,
바람에게 말을 걸어보자.
걸림 없는 바람이 무엇인들 거르겠는가.
또 혹시 아는가.
이리 저리 떠돌며
온 천지에 내 마음 전해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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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6/07/11 17: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제가 첫손님은 아닐듯.. 하지만 첫글 남깁니다.
    집들이 축하합니다.
    소녀적 감성은 여전하시군요.
    날선 검, 목숨을 내걸고 마시는 술, 그리고 시정잡배까지 많은 사람들의 치열하고 단단한 삶의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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