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

영농일기 2019/06/04 10:13
진딧물은 일단 잡은 듯 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진딧물은 죽어도 알들은 살아남아
몇일 뒤 알을 깨고 나와 다시 번진단다.
그러니 적어도 3~5일 간격으로
3번은 약을 해야 한단다.

지금까지 4번 약을 했다.
그러나 알들까지 방제가 됐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몇일 전 3단적화를 해준 아내와 동생은
살아있는 벌레들을 여러번 봤단다.
아직도 몇번은 더 약을 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고추잎들이 대부분 쭈글쭈글 하다는 것이다.
백기호는 이를 근거로
진딧물 보다 총체벌레가 문제란다.
그는 총채벌레가 번지면 완전히 농사를 망친다며
빨리 총채 약을 하라고 난리다.
그러나 용세 성님은 아니란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총채벌레가 없단다.

누구 말이 맞을까?
쭈글쭈글한 고추잎 사진을 찍어
농기센터 황과장에게 보냈다.
병충해 탓인지 영양부족인지
이유를 알려달라 부탁했다.

황과장 말은 약해(藥害)란다.
비료를 잘못 줬거나 방제약이 독해
잎들이 탄 것이란다.
비료는 준 적이 없으니
방제약이 문제인가?
약을 너무 독하게 줬나?
아님 황이 문제가 됐나?

본래 어제 약을 한번 더 하려 했으나
일단 쉬었다.
대신 미생물을 물에 타 뿌려줬다.
만약 황이 문제라면
조금이라도 씻겨 나가기를.....

아침에 밭에 들러
진딧물이 잔득 묻은 잎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농사를 짓다 보니 별 걸 다 산다.
나, 수평자도 샀다.)
아직도 살아있는 놈들이 있다.
아이고,
바로 또 약을 해야겠구나.

내가 치는 약이 천연약제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화학농약을 이렇게 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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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령

영농일기 2019/05/28 11:32
아침에 밭에 나가 보니
진딧물이 엄청 많이 번졌다.
그제 제법 세게 약을 쳤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번졌을까?

그렇잖아도 백기호씨가 겁을 주어 맘이 편치 않은데
정말 안되겠다 싶다.
내일쯤 강한 약을 쓸까 했는데
하루 당겨 C단계 약을 치기로 했다.

나는 4단계로 약을 정리했다.
A단계는 예방형, B단계는 일상형,
C단계는 경계형, D단계는 비상형이다.
오늘 치는 것은 C형이다.
병충해가 발생하면
바로 C단계로 갔어야 했는데....
내가 오만했다.
천연농약의 효과를 너무 믿었다.

오늘 치는 약으로 잘 해결되면 좋겠다.
만일 안 되면 D단계,그래도 안 되면 초비상 단계로 가야 한다.
초비상 단계는 가성소다나 황토를 더하는 것으로
벌써 이 단계까지 간다면
올 농사는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마저 안 듣는다면
결국 화학농약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농사에 대한 나의 순정도, 낭만도
모두 끝장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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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의 전쟁 - 개전

영농일기 2019/05/27 11:45
진딧물이 여러 포기에 발생했다.
처음 발생했을 때 쉽게 방제가 돼 마음을 놓았는데
이틀 전 정기 방제를 하다 보니
여러 포기에, 그것도 끔찍할 만큼 진딧물이 붙어 있었다.

본래 고추에도 진딧물이 많이 붙는단다.
그렇다면서 어느 50년 농사 고수가 비법을 알려줬다.
고추 포기 사이에 미리부터 진딧물 약을 묻으라는 것.
고추가 농약을 빨아들이면서 약물이 배어
진딧물이 얼씬도 못 한단다.

정말 완벽한 예방법 같다.
그러나 나는 따르지 않았다.
평생 몸 속에 진딧물 약을 품고 사는 고추가
건강한 먹거리를 인간에게 주겠는가?

그렇다고 진딧물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어제 다시 천연농약을 쳤다.
그런데 오늘 백기호가 나도 없는 새 우리 밭을 보고 가선
나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올 농사는 벌써 다 망쳤네요.
형님 고추밭은 벌레들 운동장이예요.
40% 정도만 건강하고 나머진 다 털렸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내 눈엔 10여 포기에 진딧물만 보이는데
그의 눈엔 응애와 총채벌레가
온 밭에 널렸단다.
그러면서 빨리 농약을 치라고 난리다.

내딴엔 연타까지 날렸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에겐
그렇게 전혀 효과가 없었던가?

순간 너무 실망스러웠다.
작년에도 응애 때문에 고전을 했는데
이러다 정말 올 농사도 망치고 마는 것 아닌가?

백기호에 따르면
나처럼 유기농에 도전한 한 후배 귀농인은
하우스 두채에 고추를 심었다가
벌써 한채를 포기하고 정리해 버렸단다.
그의 밭은 나보다도 더 엉망이더란다.

주변의 모든 벌레들이
농약을 쓰지 않는 밭으로 몰려든다며
빨리 농약을 치라는 백기호에게
나는 단호히 말했다.

"아직은 아니다.
몇번은 더 내 식대로 하겠다."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하게
약을 쳐야겠다.
그래도 안 되면....

미리부터 좌절할 건 없다.
갈데까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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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일상 속에서 2019/05/18 15:55
어제 남우가 이사를 했다.
그보다 이틀 전엔 두희가 이사를 했다.
내가 지난달 29일 이사를 했으니
불과 한 달 사이 온 가족이 따로 이사를 한 셈이다.

이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구나.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할 길이었다.
남우는 남우 대로,두희는 두희 대로,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모두 새 출발을 한다.

용감하게 집을 뛰쳐나갔던 남우는
이제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재정비를 할 때다.
지금껏 엄마와 살아온 두희는
이제 홀로 제 갈길을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아내도, 평생 서울에서만 살아온 아내도
이제 시골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나는 귀농한지 3년째.
그러나 올해도 실수의 연속이다.
농사엔 정해진 법이 없다.
최상승의 불법은 정해진 법이 없다지만
농사는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작년에 이미 그렇다는 것을 알고
올핸 내 생각대로 하리라 작정했지만
경험이 없다보니 또 남의 말에 휘둘리고 말았다.

고추는 여전히 고전 중이다.
장대하게 큰 것도 많지만
성장이 미흡한 것도 그만큼 많고
오늘 내일 하는 고추도 수십 포기다.
아무래도 물주기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점적호스를 한 줄씩 포기 가까이로 옮겼지만
효과는 별무신통이다.

텃밭에 심은 토마토 가지 호박도
모종 하루만에 잎들이 다 타서 떨어지고
새로 어렵게 잎을 틔우고 있다.
이러려면 뭐하러 모종을 심을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원인을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그제는 농기센터 황과장을 초대해 의견을 물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으나
그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애꿎게 술만 잔뜩 마셨다.
센터 직원들은 술을 안 마셔
혼자서 대취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술김에 또 전화를 20여 통이나 했더라.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내
대체 무슨 말을 했을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을까?
한 말을 기억 못하니
내심 불안하고, 그런 내가 한심하고,
정말로 우울해 못 살겠다.

3년은 농사를 지어봐야 비로소 농부가 된단다.
나는 1,2년 안에 해 내겠다 큰소리 쳤는데
아무래도 3년 다 걸려야 할 듯하다.

아무려면 어떠냐?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빨리 간들, 멀리 간들
결국엔 모두 만난다.

우리 남우와 두희도 초조해 하지 말고
히루하루를 즐겁게,
그리고 힘차게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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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상

한담 2019/05/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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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적게 하든 많이 하든
농장에서 돌아오면
술 한잔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특히 아들이 전통 막걸리를 보내온 뒤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신다.

아내가 온 뒤 술상도 달라졌다.
예전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먹던 반찬을 안주 삼아 마셨는데
지금은 제대로 된 맛있는 안주가 있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달 29일 이사를 했다.
아내는 식탁을 창가에 두었다.
이곳에 앉아 마시면
더욱 술맛이 난다.

오늘은 코다리찜이 나왔다.
일은 땀도 안 날만큼 하고선
술은 거나하게 마신다.

좋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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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골 2019/05/14 15:05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정말 좋군요. SNS가 우리 일상이 되기전의 기분으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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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나무

한담 2019/05/12 08:41
이곳에선 대추나무를 '어르신 나무'라고 한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랫것들이 다 모인 다음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이 집안 어르신인 것 처럼
봄철 온갖 풀과 나무가 다 잎을 피운 뒤에야
비로소 싹을 틔우기 때문이라고.

심은지 50일이 되도록
우리 대추나무도 요지부동,
가지가 하얗게 말라붙은 채로
변화가 없었다.

보다 보다
아이고, 죽었나보다
뽑아 버리려 했더니,

이런!
보일듯 말듯
싹이 돋았다.

어르신,이제 오셨습니까?
하마터면 못 뵐뻔 했습니다.
올 가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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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

영농일기 2019/05/10 11:13
모종을 심은지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우여곡절이 참 많다.
나의 조급증도 문제지만
모종들이 영 신통치가 않았다.
닷새 엿새 일주일이 되도록
착근들을 못하고 시들시들했다.

여러 사람에게 원인을 물었으나
대답은 한 가지.
심을 때 물을 안 준 것이 화근이란다.
설사 밭에 습기가 넘쳐도
심을 때만은 물을 충분히 줘야 착근이 된다는 것.
육묘 전문가가 주지 말래서 안 준 것인데
내가 생각해도 물을 안 준 것이 잘못이다.

닷새 지나서야 부랴부랴 물을 주었다.
그러나 멀칭을 해놓아 쉽지 않았고
400그루를 하나 하나 살펴 물을 주기도 어려웠다.
결국 대충 물을 주다가
급기야 30여 그루는 뽑아내고 다시 심었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아직도 시들시들한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은 장대하게 크는데
왜 어떤 것은 그다지 작고 여릴까?
한날 한시 한 모판에 심었을 텐데
이처럼 차이 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하긴 사람도 그와 같지 않던가?
붓다는 분별 말라 하시지만
세상엔 엄연히 차별이 있음이 가슴 아프다.

내가 화학농약과 비료를 안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아무리 내가 유기농을 하고싶어도
주변의 도움 없인 안 된단다.
주변에서 약을 치면
그 약들이 날아들어올 뿐더러
벌레들은 약이 없는 내 밭으로 몰려든단다.

나도 안다.
그러나 날아들어오는 농약이
직접 작물에 친 농약 만큼 해롭겠는가?
내 밭으로 몰려오는 벌레들은
내가 더 열심히 막으면 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만류와 염려에도
나는 유기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최대 600포기를 심을 수 있는 밭에
고추도 399포기 밖에 심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것이
내 작물에 대한 나의 순정인지 모르겠다.

적게 심은 만큼
한 포기 한 포기가 너무나 소중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차별이 나는 것이 세상이니까.
그러나 내 순정을 후회할 만큼
피해가 크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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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법

마음의 편린 2019/04/28 08:54
요즘 거울을 보면
머리숱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아내에게
"봐봐, 내 머리 많이 늘었지?
이제 대머리 아니지?"
하고 물으면

아내는 피식,
"하나도 안 늘었어.
그대로야"

그런데 왜 내 눈엔
머리가 많이 난 것 처럼 보일까?

예전 머리숱이 그래도 괜찮을 땐
머리 빠지는 것만 보였다.
매일 거울을 보며 머리 속 빈 곳만 찾았다.

머리가 많이 빠진 지금은
머리가 조금이라도 새로 났을까 찾는다.
그러니 머리카락 있는 것만 보인다.

행복과 불행도 그런 것 아닐까?
무엇을 찾는가에 달린 것 아닐까?

내가 찾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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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방제

영농일기 2019/04/26 17:21
오늘 1차 방제를 했다.
은행 열매 삶은 물과 자닮오일,
그리고 자닮 유황을 연하게 섞어 만든 1단계 농약이다.

모종 심은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벌써 벌레가 붙은 것이 여러개더라.
약을 뿌리자 한 마리는 바로 죽고
서너 마리는 급히 도망 갔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안 보인다.
어디 숨었나, 어디 가서 죽었나?

어제 심은 고추는 극대과종 '샛별'.
열매가 크고 맵기는 중간 정도란다.
제대로 키우면 손바닥만 하단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키우면
아무래도 조금 작을 것이라고.

그동안 직접 배양한 미생물을 6차례나 줬고
기비도 퇴비와 유기질 비료만 주었다.
앞으로도 화학 비료와 농약을 일체 쓰지 않을 작정이다.
이를 듣고 벌써 여러 사람이
올 가을 내 고추로 김장을 담그겠단다.
정말 그렇게 해주면
고추 팔 걱정은 없겠다.

그러나 만일 내 천연농약이 효과가 없다면
화학농약을 쓸 수밖에 없다.
그 경우에도 되도록 적게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올해는 천연농약을 미리, 제대로 많이 준비했으니
끝까지 유기농으로만 기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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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영농일기 2019/04/25 16:50
드디어 오늘 고추 모종 399포기를 심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 혼자 하면 6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내와 누이동생이 도와 3시간도 안돼 끝났다.

오래 벼르던 일을 해치워 마음이 홀가분하다.
하지만 한 구석엔 찜찜한 부분이 있다.
오늘 심은 게 제대로 심은 것일까?

본래는 땅을 파서 모종을 심고 흙으로 덮은 뒤
물을 준 다음 꺼진 부분을 다시 흙으로 채워줄 계획이었다.
그래야 뿌리가 쉽게 정착하는 것으로 배웠다.
주는 물도 그냥 물이 아니라 미생물 배양액을,
심을 때도 뿌리를 잘라 펴서 심을 계획이었다.
모두가 뿌리 활착을 촉진키 위한 것이다.
이러러면 아무래도 혼자로선 힘들 것 같아
은근히 아내가 와주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육묘상이 와서 보더니
흙이 습기가 많다며 오늘 물을 주지 말란다.
또 멀칭 매트가 너무 질겨 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모종판에서 뽑아 그대로 심고 물도 주지 못했다.
그동안 수십번이나 머리 속으로 연습한 나의 모종심기는
허망하게 무용지물이 됐다.
일은 빨리 끝나 좋았지만
뭔가 아쉽고 찜찜하다.
제대로 한 것인지 자신이 없다.

내가 하도 걱정을 하니까
누이 동생이 하는 말,
"오빠, 식물들은 생명력이 질겨.
마른 땅에도 꽂아만 놓으면 대부분 살아."

그럴까?
정말 그럴까?
그래야지.
그렇다니 믿을 수 밖에.

오늘 심은 고추 399포기는
직업적 농사로는 아주 적은 양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작년의 농사 실험에 이은
본격 농사 도전이다.
오늘의 결과가
앞으로의 내 길을 결정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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