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일상 속에서 2019/06/3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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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밖으로 보이는 빗속의 텃밭이 참 싱그럽다.

비 오는 날
농장 하우스에 앉아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건
귀농 뒤 얻은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에서 쉬다가
아내에게 갑자기 농장에 가자 했다.
가서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 하자고.

어쩐 일인지 아내도 선뜻 따라 나선다.
정작 아내와 함께 가려니
아무래도 빗소리 보단 음악이 좋을것 같다.
미니 오디오를 들고 가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다.

그런데 아내가 문득
"우리 여기서 저녁 먹을까?" 한다.
냉장고 속 삼겹살을 가져다 구워 먹잔다.
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

아내는 집으로 저녁 준비를 하러 가고
나는 즉시 숯불 피울 준비를 했다.

빗 속의 커피 한잔이
따뜻한 저녁과
소주 한 잔으로 바뀌었다.

비는 종일 내리고
어느새 어둠도 내리고
얼큰한 내 마음 촉촉이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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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농일기 2019/06/25 16:24
어제도 고추꽃은 엄청나게 떨어졌더라.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풀이 죽어 용세 성님에게 하소연 하니
"수정이 되면 꽃은 절로 떨어지는 거여"
"...!"

지금 뭐라고 하는 건가?
수정이 안돼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정이 끝나 떨어지는 것이라고?

용세 성님 말에 따르면
꼭지가 달린채 떨어지는 건 문제가 있지만
꽃만 뚝 떨어지는 것은 정상이라고.
그런데 이 말을 왜 이제서야 하는가?

처음부터 이상했었다.
가장 아름다운, 생의 절정기에 우수수 지는 벚꽃이
모두 수정이 안된 때문이라면
벚나무 열매는 어떻게 열리겠는가?
꽃이 떨어지는 것이 이상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인터넷을 뒤지고 농약상을 찾아간 것인데
그땐 아무도 꼭지채 떨어지냐, 꽃만 똑 떨어지느냐 묻지 않았다.
용세 성님까지 모두가 비정상인 이유만 잔득 늘어놨다.

사람들 참 고약하다.
내가 그 때문에 얼마나 고민했는데...
물론 고온 등으로 떨어진 꽃도 있겠지만
전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농사를 접어야 하나까지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처음 400포기의 고추에서
600근의 건고추 생산을 목표로 잡았다.
본래 노지고추는 3그루에서 1근을 본다.
하우스에선 농사를 잘 짓는 경우
1그루에서 1근까지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3단적화 등 첨단농법을 도입하면서
그 1.5배의 수확을 목표로 한 것이다.
물론 의욕일뿐이다.
그러나 은근히 500근은 기대를 했다.

꽃이 우수수 지면서
그 꿈은 사라졌다.
심지어 내 먹을 김장거리나 챙길 수 있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그게 그게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우리 고추, 참 잘 크고 있다.
진딧물 때문에 조금 고생은 했지만
남들보다 키가 2배는 되는 것 같다.
그것도 처음엔 하체부실, 또는 웃자라는 것이 아닌가 염려했지만
황과장은 정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너무 잘 자라고 있는 것 아닌가?

용세 성님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단다.
지금 달린 고추들을 제대로 수확하기 위해선
충분한 영양공급이 필요하단다.
그러면서 비료,
내가 화학비료를 거부하는 것을 의식해선지,
조심스레 외국산 화학비료를 권했다.

그 많은 고추들을 크게 키우려면
확실히 액비와 물 만으론 안될 것 같다.
그러나 화학비료는 그렇고.....
전남 나주의 친환경농업회사에서 생산한 천연 영양제를
거액을 주고 대량 구입했다.
꿈이 되살아났는데
이 정도 돈은 써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고추농사는 이제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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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영농일기 2019/06/23 14:04
물 준 효과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진딧물이 생긴 고추나무 전체가 시커멓다.
진딧물이 많이 발생한 고추나무는
따로 약물을 만들어 '융단폭격'을 해왔는데
죽은 시체들로 까맣게 뒤덮인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이들은 얼마 뒤면 다시 고추나무를 재점령할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하나?

융단폭격도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구나.
그런데 앞으론 융단폭격도 어렵다.
나무들이 훌쩍 자라
키가 이미 내 가슴까지 닿고 있기 때문이다.
약물이 엄청나게 많이 들뿐 아니라
약물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아진다.

결국 화학농약을 쓸 수밖에 없나?
아니, 화학농약도 마찬가지다.
그냥 뿌려서는 역시 일시적 효과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많이 배우고 있는 '51년 농부'는
진딧물 약은 반드시 멀칭 전 토양에 뿌려야 한다더니,
만일 그렇게 안했다면 나중에라도 꼭 땅에 묻으라더니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진딧물을 잡으려면 그 방법밖엔 없는 것이다.

작년에도 경험했지만
천연농약은 병충해 발생 이후에는 별로 효과가 없다.
사전예방, 혹은 초기단계에서만 유효하다.
사실 실질 약효도 조금 의심스럽다.
이번 약물은 작년보다 훨씬 정성들여 만들었건만
진딧물과 벌레에 직접 살포해보니
어지간해선 살충 효과가 없더라.
천연약물 약효는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지만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시험삼아 약물을 뿌려본 벌레는
시간이 가도 잘도 도망 가더라.
이번에도 내가 약물을 잘 못 만든 것일까?

일단 진딧물약은 지금이라도 땅에 묻기로 했다.
진딧물 잡는데만 신경 쓰다간
농사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마철도 다가오는데
이제 진딧물 따위가 아닌,
진짜 싸움에 집중해야 한다.

이로써 완전 유기농은 물 건너갔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더 이상 화학농약을 쓰는 일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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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니다

영농일기 2019/06/21 09:58
꽃들은 여전히 떨어져 있지만
허리를 뉘인 고추는 없다.
아침에 밭에 나가보니
그제 어지럽게 쓰러졌던 고추들도
제법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더라.
이틀 연속 물을 많이 주었더니
그 덕분인가?
더 이상 나아지지 않던 고추잎들도
다시 좋아지는 것 같다.

잎들이 쭈글쭈글해진 것은
목이 마르다는 비명이었던가?
꽃들이 줄창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생연후 출산, 나부터 살아야 열매도 맺는다는
집단 항의인가?

문제가 확실해졌다.
고온과 건조.
하우스는 너무 덥고 땅은 너무 말랐던 것이다.
실제로 밖이 27도만 돼도 안은 40도를 넘더라.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노지는 30도가 넘어도 햇빛만 따가울 뿐 그다지 덥지 않다.
그러나 하우스 안은 한증막으로 변한다.
지붕이 비닐로 막혀 열기가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더위 속에선 고추가 생장활동을 멈춘다.
꽃들이 수정이 안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진딧물은 건조할 때 많이 발생한다던데
땅에 물 조차 부족하니 그리 극성인 것일까?

본래 우리 밭은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시들해 죽어가는 고추들을 하우스 고랑에 심이두니
너무나 건강하게 자라더라.
수분이 전혀 부족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고추가 있는 이랑, 높은 두둑은 사정이 다른가보다.
100평에 1톤이면 충분하다기에 1주 15분밖에 물을 주지 않았는데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어제도 30분씩 두번, 1시간이나 더 물을 주었다.
나는 30분 더 주는 것도 혹시 과습을 부를까 '바들바들'인데
아내와 동생은 "더 주라" 난리였다.
웬만하면 남의 말 안 듣지만
이번엔 불평을 하면서도 하라는 대로 따랐다.

물이야 더 주면 그만이지만
하우스의 고온 상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하우스 지붕을 걷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 차양막이라도 덮어줄 수 밖에.
그래도 손 쓸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니라니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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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창동 2019/06/21 19:0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오우, 다행입니다요.
    농사의 기본은 물주기?
    곧게 잘 큰 고추를 상상해봅니다. ^^

  2. 쥔장 2019/06/23 14:32 PERMALINKMODIFY/DELETE REPLY

    물을 주라 주라 해서
    연 사흘 1시간식 줬더니,
    이번엔 너무 주었나?
    하우스가 온통 물구덩이네.
    으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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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가?

영농일기 2019/06/19 13:58
아침에 밭에 나갔다.
오늘 고추 상태를 보고 앞길을 정하리라.
밭에 들어서니
허리 꺾인 고추들이 즐비하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니
가지가 뚝뚝 부러지기도 한다.
이것 참!

혹시 물이 부족한 건 아닐까?
밭 고랑의 풀들은 아침마다 잎에 이슬이 맺히는데
왜 우리 고추나무 잎들은 푸석 푸석 말라 있을까?

결단을 내리기 전에 농기센터에,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농기센터에 들고 갈 사진을 찍고 있는데
때마침 황과장이 직원들과 함께 나타났다.
이심전심인가?
너무나 반가웠다.

황과장은 고추나무들을 보자마자
물 부족이란다.
고추가 쓰러지는 것은
특별한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물이 부족할때 나타나는 현상이란다.
글세,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1톤의 물을 주지 않았는가?
1톤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황과장은 그렇지 않다며
제초매트를 들추고 땅을 파 보인다.
내 보기엔 축축하다.
토양 습도계로 재봐도 일부를 제외하곤
적합 또는 과습으로 나왔었다.
그러나 황과장은 아니란다.
이 정도면 엄청 메마른 것이란다.

내가 염려하던 하체 부실도
사실은 부실이 아니라 고추가 원래 그런 거란다.
그래서 줄을 매 주고, 매듭을 지어주는 것이라고.

만일 고추가 쓰러지는 원인이 단지 습기 부족이라면
오히려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물 주는 일이야 아주 쉬운 일 아닌가?

평소 1주 15분씩 물을 주었으나
앞으로 이틀 혹은 사흘에 한번 꼴로,
그것도 30분 이상 충분히 주기로 했다.
오늘은 급한대로 장장 1시간을 주었다.

꽃이 떨어지는 이유도
특별한 병이나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란다.
단지 하우스 안이 너무 덥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밤에 왜 하우스를 닫아주냐고 나무란다.
밤에도 고온이 유지돼
고추가 웃자라고 꽃이 수정이 안 되는 것이라고.
누구는 하우스 문을 꼭 닫아주라 했는데...
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나?

지금은 황과장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물 부족은 틀림 없는 것 같다.
여하튼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진딧물이야 늘상 달고 사는,
일종의 성인병으로 생각하고 관리하면 된다.

일단 물을 충분히 주면서
추이를 보도록 하자.
아직은 결단을 내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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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서다

영농일기 2019/06/18 10:09
아무래도 올 고추 농사는 틀렸나보다.
일주일이 되도록 고추꽃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영양제도 줘보고, 액비도 투여했지만
꽃은 속절없이 지고
고추잎도 더 이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내가 농사를 너무 쉽게 생각했을까?
올 농사는 나름대로 많은 준비와 노력을 했다.
작년 가을부터 천연 농약을 준비했고
올해도 일찍부터 땅을 고르고 미생물을 투여했으며
새 농법에 관한 많은 정보를 익혔다.

처음엔 잘 되는 것 같았다.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고추들은 쑥쑥, 밝게 자랐다.
남들보다 우뚝하게 자란 모습에 뿌듯했고
남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도
내심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곧 이상이 감지됐다.
잘 듣는 것 같던 천연 약재가
진딧물을 잘 잡지 못했다.
약물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딧물에 직접 C단계 약물을 뿌리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봤다.
진딧물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다니지 않는가?

이럴 수가!
약물 범벅이 되도록 치면 모르되
살짝 스쳐서는 효과가 없구나.
그래서 살아남은 놈들이 많고
몇일 뒤면 다시 번지곤 했구나.
매번 약물이 줄줄 흐르도록 쳐야 한다면
약해를 어쩔 것인가?
결국 자닮 농약의 장담은 허세인가?

D단계 약을 써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초비상책인 가성소다를 섞어 뿌려봤다.
확실히, 분명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런 초고강도 대책은 위험하다.
약해 가능성이 몇배나 높다.
그렇다면.....결국 화학농약에 의지해야 하나?
유기농에 대한 자신이 갑자기 사라졌다.

꽃이 떨어지는 확실한 이유도 못 찾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효과를 기대하긴 아직 이른가?
도무지 변화가 없다.
하체가 부실하니
아침 저녁으로 쓰러지는 놈들도 허다하다.
첨단 농법이라고 3단 적화를 했는데
그게 오히려 이런 부작용을 부른 건 아닌지.
조금 아는 게 화근이 된 건 아닌지.

유기농은 안 된다고,
유기농을 한다는 사람들도 실제론 슬쩍 슬쩍 농약과 비료를 쓴다고,
나에게 농약을 권하던 사람들을 나는 속으로 경멸했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만일 농약을 쓰게 되면 절대 유기농을 주장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농사는 역시 현실인가?

농사는 낭만이 아니다.
그건 안다.
그러나 오직 돈 벌이가 목적이라면 왜 농사를 짓는가?
농사는 가성비가 꽝이다.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어리석다.
그러나 유기농이라면 무엇보다 명분이 있고
나라면 적당한 소득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또한 낭만이었던가?

나는 다시 기로에 놓였다.
올 농사를 아예 포기할 것인가,
관행농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실패를 무릅쓰고 끝까지 해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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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영농일기 2019/06/12 13:58
해 뜨기전, 새벽에 밭에 나갔다.
진딧물은 새벽에 약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란 말이 있어
방제 시간을 바꿔본 것이다.
그러나 농장에 들어서자 마자 깜짝 놀랐다.
고추꽃들이 마치 벚꽃처럼 우수수 떨어져 있지 않은가?

꽃봉오리가 많이 맺힌 건 알았지만
정작 꽃이 핀 건 별로 보지 못했는데
밤새 웬 꽃들이 이렇게 많이 떨어졌는가?

또 무슨 병이 번진 건 아닌가 하여
가슴이 덜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스프링쿨러 1분 틀어준 것 밖에 없는데....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니
토지가 과습하든가
영양이 부족하든가
하우스가 너무 덥든가
꽃이 너무 많이 달렸거나
바이러스 병이 번진 것이란다.

내 추측컨데는
하우스라 고온인데다 영양이 부족하고
꽃이 너무 많이 달린 탓인 것 같다.
특히 많은 고추들이 키만 멀쑥하고 하체가 부실해
진작부터 영양 보충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었다.

이 때문에 이미 골분액비를 만들고 있다.
골분을 물에 풀고 미생물을 투입해 발효중이다.
중간에 황산고토와 붕소까지 넣었다.
이제 이번 주말이면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미 늦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영양제라도 빨리 사다 먹여야 하는 것 아닌가?
부랴부랴 농약상에게 가 물어봤다.

고추꽃들이 수정이 안됐기 때문이란다.
수정이 안 된건 영양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 특별히 해줄 만한 일은 없단다.

고추농사 짓다보니 참 별 일도 많다.
3단적화로 꽃이 무더기로 피어
금방 부자라도 될 듯 기뻐했건만
그 꽃들이 수정이 안돼 우수수 지다니...
대체 이게 웬 변고일까?
이제 겨우 농사 초반인데
앞으론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부장이 어제 한밤 전화를 해왔다.
아마도 내 블로그를 본 모양이다.
농사 지으며 그렇게 고생을 해서 어쩌냐고,
왜 그렇게 쉬운 일이 없냐고 걱정을 한다.

어쩌겠는가?
화가 나고, 마음이 불안하면
허허허
한번 웃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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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전

영농일기 2019/06/11 11:51
우리 고추잎들에 생긴 이상은
단순 약해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약해일 것 같다는 예상은
나도 했었다.
동력분무기가 고장나
수전 소독기와 새로 산 충전식 분무기를 사용하면서
평소 20리터였던 약물이
30리터, 40리터로 늘었었다.
또 진딧물과 총채벌레를 단번에 잡겠다는 욕심에
약물이 줄줄 흐를 만큼 과도하게 약물을 살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스프링쿨러를 작동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잎들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총채벌레 피해가 아니라니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진딧물이 다시 번지고 있다.
방제를 한지 이틀이나 사흘만 지나면
다시 진딧물이 꿈틀 꿈틀 출현한다.

대체 얼마나 자주 방제를 해야 하나?
이틀? 사흘에 한 번?
이렇게 자주 해야 한다면 너무 짜증스러운 일이다.
혹시 이게 천연악제의 한계일까?

벌레와의 싸움은
단판에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농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므로 빨리 끝내려 하기보다
일상으로 여겨야 한다.

이왕 해야 할 싸움이고
지구전일 수 밖에 없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그래야 오래 싸울 수 있다.
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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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일상 속에서 2019/06/09 09:22
어제 남우와 두희가 왔다.
자식들이라고, 우리가 어찌 사는지 보러 온 것이다.
아이들이 큰 뒤 부터
함께 살면서도 같이 밥을 먹은 적조차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뿔뿔이 헤어진 뒤에,
그것도 멀리 이곳 시골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하게 되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나는 그저 반가운데
아이들은 아직도 좀 서먹한가 보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들 기억 속의 내 모습은
늘 찡그린 표정일 것이다.
특별히 자기들에게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만사에 심각했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알 리 없다.
나 또한 내 표정이 그토록 차갑고 심각한 줄
아주 늦도록 몰랐었다.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나는 언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뒷전이었다.
그 모두가 사실은 나의 욕심, 나의 헛된 승부욕이었건만.....
뒤늦게 이를 알았을때
아이들은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다.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지금도 너무 후회스럽다.
아내, 특히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러나 아내와 달리 아이들은
이미 실 끊어진 연 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특히 남우는
여전히 굳은 표정에 말이 없지만
누구보다 속정이 깊다.
내가 대전으로 자의반 타의반 내려갈 때부터
참으로 세심하게, 온갖 배려를 해주더니
얼마전에도 무슨 바베큐를 보내왔더라.
엄청 맛있다고 소문났다며 드셔보시라고.

두희도 앞으로 달라질까?
우리에게 잘 하기 보다
제 길이라도 좀 편하게 갔으면 좋겠다.
늘 씩씩한 척 하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 늘 불안불안하다.
우리 두희, 좀 덜 전투적이면 좋겠다.

토종닭을 사다가 농장에서 닭죽을 만들어 먹다.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먹으니
고기도 맛있고 술도 맛있다.

오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
올 때보다 표정들이 편해져 좋다.
신에게 감사한다.

앞으로 이곳을
아이들이 언제나 찾아와 쉴 수 있는
최고의 쉼터, 최후의 의지처로 가꿔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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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 수 없다

영농일기 2019/06/06 12:48
태풍급 비바람이 몰려온단다.
병충해 때문에 매일 걱정인데
날씨까지 사람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농군이 되면 마음이 태평해질 줄 알았다.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 쉬며
힘닿는 대로 일하고
소박하게 먹으며
당최 근심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비가 오면 작물이 쓰러질까,
바람이 불면 하우스가 무너질까,
하늘이 맑으면 또 맑은대로
병충해 때문에 걱정이다.

집들이차 찾아온 백기호는
여전히 총채벌레 타령이다.
자기네 고추는 벌써 수확할 만큼 자랐다고 자랑하며
올 내 농사 살리려면 빨리 약을 치란다.
당장 자기가 시키는대로 하란다.

우리 고추들 잎에 생긴 문제는
총채벌레 때문이 아니라는데,
단지 약해(藥害)일 뿐이라는데,
내 생각에도 약해 같은데...
그러나 누가 알랴?

농사는 하늘이 반은 짓는단다.
모르는 일은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매번 최선을 다 하자 말하지만
무엇이, 어디까지가 최선일까?
그 또한 알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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