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영농일기 2019/09/24 19:10
이제 가을인가?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서늘하다.
풀들도 기세가 꺾였다.
예전엔 베어내기가 무섭게 일어서더니
일주일 전 베어낸 자리가 아직도 누렇다.
베어낸 풀이 마르도록 새 풀이 자라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올해 더 이상 풀을 깎는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벌레들은 여전하다.
아직도 고추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보이지도 않던 벌레들이
요즘들어 자주 눈에 띈다.
가을이 오면서 벌레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가,
아님 이제서야 내 눈에도 숨은 벌레가 보이는 건가?

처음엔 벌레를 보면 장갑부터 찾았다.
맨손으론 도저히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갑을 찾아 오면 벌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어디에 있었는지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번번히 놓치다 보니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농사를 지으려는 거야 말려는 거야?
눈 딱 감고 맨 손가락으로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흉칙한 색깔과 감촉에 진저리를 쳤지만
몇 번 해보니 할만 했다.
그러나 지금도 벌레를 잡으면 바로 손부터 씼으러 간다.
내년 쯤엔 벌레를 잡은 손 그대로
맛있게 밥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올 고추농사는 이미 끝난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고추가 달려있고 무수히 꽃들이 피어나지만
이제 더 이상 열매가 붉어지진 않는단다.
그렇다면 고추가루는 80근으로 끝나는 건가?
600근 목표가 80근으로 끝나다니
허탈하고 창피하다.

올 농사에 실패한 건
초기에 고추나무 관리를 잘못한 것도 있지만
별레를 거의 못잡은 탓이 크다.
벌레들은 꽃이 필때 꽃 속으로 침입,
고추 속에서 고추와 함께 큰단다.
일단 들어가면 방제할 방법이 없단다.
그래서 꽃이 필 때 소독을 자주 하라고 한다.
꽃은 매일 수많은 꽃을 피우는데,
그럼 날마다 약을 쳐야 하나?
이건 아닌 것 같다.
날마다 친다 해도
약을 친 뒤 피어난 꽃들은 또 어쩔 것인가?

이 때문에 화학농약으로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보는 피해라면,
설사 좀 더 피해를 본다 해도 큰 차이만 아니면
무농약을 고집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 차이기 크지 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내 경우, 반반 정도를 각오했지만
벌레가 3, 내가 2를 먹은 것같다.
그런데 용세 성님 고추밭은 너무나 깔끔하더라.
벌레 먹은 고추 하나 없이 아직도 싱싱하기만 하더라.
우리 밭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라.

그런가?
화학농약을 치면 이렇게 효과가 있는가?
그만큼 내 농약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님 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는가?

올 농사가 잘못된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 농사도 장담하기 어렵다.
600은 커녕 200근 넘기기도 쉽지 않다.
내년 농사 시작 전에
반드시 해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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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徨先生 2019/10/04 19: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列子的歌!!

  2. 쥔장 2019/10/05 15:37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황룡선생, 어찌 이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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