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치는 날

영농일기 2018/05/12 12:38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다음주 목요일에도 또 비가 온다니
대체 언제까지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할까?

나막신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느 어머니의 고민이 생각난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안 오면 안 오는대로 걱정하는 그에게
비가 오면 우산을 파는 작은 아들에 좋고
비가 안 오면 나막신을 파는 큰 아들에게 좋으니
날마다 행복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은 틀렸다.
그것은 다른 한 아들의 불행을 외면한 것이다.
눈을 한편으로 돌린다고
나머지 한편의 불행이 없어지진 않는다.

어머니의 걱정을 없애는 진짜 해법은
비가 오면 헝제가 함께 우산을 팔고
비가 안 오면 함께 나막신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형제 사이에 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일체유심조 라지만
마음 하나 바꾼다고 실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일체가 공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일체가 공함을 모르거나 믿지 못하면
일체유심조는 되지 않는다.

비 때문에 요즘 날마다 공치는,
어쩌면 한달 넘게 계속 공을 쳐야 하는 나는 어떤가?

농사는 실제다.
눈을 돌린다고, 마음을 바꾼다고
농토에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며
물 먹은 토지가 제대로 갈아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써
조바심이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걱정은 걱정이다.

걱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이 결국은 공함을 알고
그 무엇에도 집착함이 없이
때에 따라 그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지금은 할 일이 별로 없네.

때론 쉬는 것도 일이다.
요즘 갑자기 무리를 했나보다.
그제는 부려놓은 퇴비를 흩뿌려주고
하우스를 조금 정리한 뒤 바로 집에 돌아왔다.
몸이 자꾸 가라앉아 견딜 수가 없었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건가?
아니다.
안하던 일을 하니 일시적으로 그런 것일 뿐이다.
또 사실, 그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다 했다.
이제 하늘이 비를 거둬주길 바랄 뿐이다.

몸은 곧 적응하리라.
또 몸에 맞춰 일하면 된다.
오늘 이미 피곤에서 벗어났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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