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한담 2010/03/22 12:18
오래전 고금소총에서 읽은 이야기다.
(기억나는대로 재구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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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가 강변에 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사유를 물었다.

"나는 저 강 아래쪽 고을의 사또였다오.
그러나 갑자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임지로 떠나는 중이라오"
--그런데 왜 이곳에서 그리 슬피 우시는지요?
"그 고을에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됐지요.
그녀와 헤어지려니 너무 슬퍼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군요"
--그럼 함께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녀는 관아에 매인 기녀라서 함께 갈 수가 없다오"
--관기와 사랑에 빠지셨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오, 그녀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지요.
내가 마지막으로 뭐든 들어줄테니 소원을 말하라 했건만
그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오."
--혹시 그녀가 이빨이나 하나 빼달라고 하지 않던가요?
"어찌 아셨소? 그녀는 기특하게도 나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내 분신으로 이빨 하나만을 원했소."

그러자 나그네가 빙그레 웃으면서,
"사또님도 넘어가셨군요. 그 여자, 그거 상습범입니다."
"뭐라구요?"
"그 고을에 오신 원님마다 그 여자에게 속아서
이빨을 안 빼준 사람이 없답니다.
그 여자, 사또 이빨 모으는게 취미거든요."

이 말을 들은 사또,
하도 기가 막혀 눈 앞이 다 노랗다.
분기가 탱천! 당장 발길을 돌려 기녀 집으로 쳐들어갔다.

"네 이년! 사또를 그렇게 기망하다니!
당장 내 이빨 내놓거라!"

그러자 처음에 반색을 하던 기녀, 사또를 흘겨보며 하는 말이
"별 미친 사또를 다 보겠네.
이빨 하나가 그렇게 아깝수?
어디 쳐박혀 있는지도 모르니
옜다, 찾아 가시오"
하며, 자루 하나를 내던지는데,
그 속에 이빨이 그득하더라.

>>>>>>>>>>>>

재미 있는가?
나는 당시 한참을 웃었다.
웃으면서 한줄기 두려움을 느꼈다.
여자들, 무섭구나!
나도 혹시 똑같은 일을 당하면 어쩌지?

남자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여자가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모두 자기에게 빠졌다고 착각한다.
하물며 조금 웃어주기라도 하면
'강변 사또'가 되지 않을 남자, 별로 없을 것이다.

요즘 골드미스들의 출세 전략을 다룬 책에
(광고만 봤다. 정확한 내용은 아니다.)
'남자들로 하여금 당신이 모두 자기만 좋아하는 줄 알게 하되
결코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말것.'
얼마나 교묘한 전략인가?
남자들, 줄 사또 나게 생겼다.

그렇다고 여자를 너무 무서워만 하지는 말기를.
여자들도 또한 사랑을 하느니.

다만, 진실할수록 엇갈리는 게 사랑이고
깊을수록 외로워지는 것이 사랑이다.
때론, 알면서도 이빨을 뽑아 주는 게 사랑 아니던가.

어느 시인이 말하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그러므로 그대여,
혹시 강변에 앉아 울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만은 찾으러 가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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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골 2010/03/22 14:0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이빨, 까짓거 다 뽑아 줄겁니다.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해도 어쩔수 없죠...
    그러나 어딘가엔
    여자들 이빨만 모으는 자도 있을 터인데...

  2. 방주 2010/03/23 09:40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매우 미쳤다는 뜻이다
    --프로이트--

  3. 양귀비 2010/03/29 11:32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런데 걱정마세요. 요즘 이빨 같은걸 뽑아달란 여잔 없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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