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16 13:46
요즘 단전호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중엔 수련을 오래 한 도사급도 많다.
그러나 내 어릴 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먹고 사는게 급해서
정신 수양이나 신체 단련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단전호흡은 커녕 태권도를 아는 사람도 드물었다.
(당시엔 당수 또는 공수도 도장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이런 시기에 나는, 참으로 드물게도, 단전호흡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학 1, 2학년 때다.

헌책방에 다니다 이상한 책 한권을 발견했다.
누렇게 색이 바랜, 국판 정도의 작은 책인데
단전호흡에 대한 설명과 도해가 세로쓰기로 돼 있었다.
당시는 교과서 외엔 대부분의 책이 세로쓰기였던 데다
내용도 한자가 아닌 한글로 돼있는 걸로 보아
그다지 오랜 책은 아닐텐데도
나에겐 마치 비서(秘書)처럼 느껴졌다.
(당시에 누가 본다고 그런 책을 발간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그 책에 가로되
단전호흡엔 무인호흡과 선비호흡이 있다.
호흡은 들이쉬고 내쉬고 멈추는 세가지로 이뤄지는데
반드시 먼저 내쉰 다음 들이 쉬고,
들숨과 날숨 사이엔 틈을 둔다.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선비호흡은
날숨과 들숨이 바로 이어지도록 이 틈, 지식(止息)을 짧게 한다.
내공을 기르려는 무인호흡은 그 틈을 길게 한다.
무인호흡은 흡식과 지식과 호식을 1:4:2의 비율로 한다.
예를 들어 6초간 숨을 들이마시면 24초간 숨을 참고 12초간 숨을 내쉰다.
이 경우 한 호흡이 42초가 걸리며 이 시간이 길수록 좋다.

나는 이 책의 지침에 따라 혼자 틈틈이 단전호흡을 했다.
물론 무인호흡이다.
그런데 문제는 척추를 곧곧이 세우고 단전에 힘을 모으라는데
이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등을 조금이라도 굽히게 된다.
그게 영 찜찜하더니 10여 년전 어느 날 서점에 새로 나온 책을 보니
본래 그렇게 등을 조금 굽히고 하는 거란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그대로 수련을 했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이게 아닌데...' 하는 느낌이 있었다.
명상호흡을 다룬 어느 책에도
'척추를 곧추세우고 단전에 힘을 툭 부리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것과 영 맞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척추를 곧곧이 세우고도 단전에 힘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복식호흡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해설해놓은 글을 읽고 나서다.

그에 따르면 숨은 폐로서 쉬는 것.
아랫배로 숨을 쉬라는 것은 그런 느낌으로 하라는 것이지
실제론 폐에 공기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심호흡을 하려면 일부러 가슴을 들어올려야 하고
그러면 횡경막이 내려간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 심호흡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보통 호흡으로도 심호흡의 효과를 거두려면
가슴을 올리는 대신 횡경막을 내리면 된다.
그게 복식호흡이다.

이에 따라 횡경막을 내린다는 기분으로 호흡을 하니
척추를 세우고도, 아니 세울수록, 저절로 단전에 힘이 모이지 않는가!

신기했다.
단전에 힘을 툭 부리라는 의미를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됐다.
그 효과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겠다.

동양의 지혜인 단전호흡도 과학적 설명이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
본래 동양의 지혜는 불립문자,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서구식 교육에 물든 우리는 과학적 설명이 있어야만 되레 이해가 쉽다.

서구는 동양의 지혜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해왔다.
그리고 대단히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불교의 가르침까지 물리학으로 풀어낸다.
내가 노자, 장자에 매료되고 그들을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도
서구의 실존철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서구를 통해서 이해하는 동양의 지혜가
진정한 동양의 지혜인가?
지금 내가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인가?

그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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