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고고

한담 2010/01/13 12:41
서울에선 별로 못본 것 같은데
(요즘 내가 서울에서 돌아다니지를 않아서 그런가?)
대전엔 이른바 7080 술집이 많다.
70~80년대 노래를 주로 들려주는, 70~80년대 분위기의 술집들이다.
특히 밤이면 주변 도시에서도 술꾼들이 몰려온다는 온천 관광지 유성엔
그 시대 스타일의 밴드가 직접 출연하는, 물 좋다고 소문난 클럽이 많다.  
나도 술김에 몇번 가본 적이 있다.
(내 발로 간게 아니다. 정말 끌려갔다)

이런 곳은 분위기도 당시와 흡사하다.
요즘 클럽들은 넓고 화려할 뿐 아니라
가수들의 공연도 노래 자체보다 춤이나 의상 등이 큰 몫을 하는,
이른바 '쇼'에 치중하지만
이곳은 무대와 홀이 구분이 안될만큼 가깝고 소박하며
가수들도 노래에만 열중한다.

그때에도 물론 화려하기로 이름난 고고클럽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곳엔 아무나 자주 갈 형편이 못됐다.
당시 대학생들은 주로 무교동으로 갔다.
그곳엔 막걸리집에도, 비록 무명이지만, 보컬들이 있었고
술이 조금 오르면 그 비좁은 공간이 금새 고고장으로 변했다.
지금도 구멍 뚫린 지붕으로 비가 새는 가운데
흥겹게 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이 난다.
미친듯이 두드려대던 드럼소리와
귀를 찢는 사이키델릭이 지금도 생생하다.

분위기는 그때와 비슷하지만
이곳 손님들은 70,80과는 거리가 조금 먼, 40대가 주류다.
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분위기를 즐기기 보다 사냥감 찾기에 바쁜 것 같다.
왠지 탐욕스럽고 끈적거리는 시선들.
그 불량한 시선들이 나는 영 편치 않았다.
기분이 그러니 아무리 좋은 노래도 공해일 뿐.
몇번 가본 뒤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끌려가면 남들이 춤 출때 혼자 도망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연말,
안 오는 잠을 억지로 청하다 보니 어디선가 7080 노래가 들린다.
술집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나를 단번에 30여 년 전으로 실어가는 그 원단의 노래소리!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실로 나오니
아내가 모 TV의 7080콘서트를 보고 있다.
'추억의 고고파티'라는 이름의 연말 특집 프로그램.
7080 가수들이 당시 자기들의 노래를  직접 부르고
관중들도 의자에 앉지않고 시종 서서 고고클럽을 재현하고 있었다.

폭삭 늙어버린 가수들,
왠지 초라해진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여전히 꿈꾸듯 자기들의 전성기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 좋았다.
특히 나이를 잊고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빛나는 눈, 발그레한 뺨으로 몸을 흔드는 초로의 관중들,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는 하마터면 눈물까지 흘릴뻔 했다.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이것만큼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게 있을까?
그 때, 그 술집의 이름 모를 사람들조차
이제는 모두 그립다.
top

Trackback Address :: http://www.eltalk.net/trackback/275

  1. 2010/01/15 12:0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