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녀를 찾아서

일상 속에서 2008/07/01 16:35
당신은 매일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보는가?
나는 열심히 본다.
그런다고 그걸 믿는건 아니다.
그냥 심심해서, 막연히 궁금해서 본다.

그것도 오래 보다 보니 매양 그게 그거더라.
그래서 이젠 그저  습관적으로 본다.
그러다보니 읽고 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뭐라고 했던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가끔 눈에 번쩍,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는 때가 있다.
오늘이 그렇다.

내용을 보자.

< 재물 : 지출
   건강 : 보통 >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 다음이 죽인다.

< 사랑 : 옥녀/강쇠 >  ! ! !

이런식의 점괘를 본 적이 있는가?
그동안 무수한 운세를 읽어왔지만 이 같이 노골적인 표현을 본적이 없다.
서둘러 ( 너무 흥분하다보니 손이 다 떨린다) 내 나이에 대한 상세풀이를 본다.

<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배우자에게 관심갖기.>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좋다 !
그런데 웬 배우자 타령인가?
아내는 천리 먼길 서울에 계시는데........

혹시 오늘 밤이라도 내려오신단 말?
아내는 가끔 눈도 뜨기 전 새벽에
"서프라이즈~" 하면서 들이닥쳐 나를 놀래킨다.
낮엔 길이 막혀 운전하기 지루해서 새벽같이 온단다.
하지만,
오래된 부부에게 옹녀-강쇠가 어디 어울리는 말인가?
틀림없이 다른 특별한 사건이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잔뜩 기대를 걸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퇴근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전화벨 소리가 울릴 때마다 귀를 곤두세우고
메일에 메신저까지 수시로 뒤져봐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퇴근 길 마주오는 사람을 은근히 쏘아보며
최대한 음흉한 웃음을 날려봐도 
왠일? 무슨 일? 뜨악한 표정으로 다들 그냥 지나간다.
제기랄!
이렇게 하루가 허망하게 가고 마는가?

별 수 없이 오늘 밤 찾아오겠다는 후배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다.
울릉도에 출장을 갔다가 직접 잡은 물고기를 회쳐 오겠다 했다.
그 회를 가지고 술집에 가면......
누가 아는가,
혹시 그 곳에서 못내 기대했던 사건이 펼쳐질지.

밥도 안먹고 기다렸는데,
뒤늦게 온 전화.
아무래도 너무 늦어 못 오겠단다.

절망 !
이렇게 또 '오늘의 운세'에 끝내 사기를 당하고 마는구나.

더 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저녁준비를 하려니
내 자신이 너무 처참하다.
이런 판에 쪼잔하게 식은 밥이나 데우다니......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그래, 나가자,
나가서 혼자라도 술이나 한잔 하자.

일부러 손님이 없는 식당을 골라 들어간다.
이런 날 쌍쌍이 노니는 X 들과 마주치면 기분만 더 잡친다.
멍하니 앉아있던 주인 아저씨가 반갑게 맞는다.

"소주 딱 한 병만 마시고 갈건데.......
적당한 안주 있나요?"
" 오늘 러시아에서 막 들어온 킹크랩이 있어요.
  혼자 드실 만한 것으로 싸게 드릴께요"

흘낏 보니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러나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돈이 문제랴.

찜으로 시키고 우선 깡술을 마신다.
소주 한병이 거의 빌 무렵 요리가 나왔다.
반쯤 벗긴 분홍빛 껍질 사이로 희디흰 속살이 꽉 차있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니
탱탱한 살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맛 있다.
그러나 가슴은 쓰리다.

먹다 말고 문득 묻는다.
"아저씨, 게에도 암놈 수놈이 있나요?"
"그럼요, 그래야 계속 번식을 하지요"
참, 그렇지.
"그럼 이 놈은..........?"
"암놈이예요"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렇다면.........,

수만리 험한 길을 쉬지도 않고 달려와
주저없이 나와 한 몸이 된 그대여.
네가 바로,
바로
옹녀였더냐?

비틀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 것은
옹녀 때문인가
술 때문인가.
그냥 게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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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운주 2008/07/13 11:59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요 며칠 기자정신을 발휘해본 결과 울릉도 후배는 J(구 CHO. 40대 중반으로 추정)모 씨로 확인됐습니다.
    한 브라더스는 객지 생활을 청산했으니 앞으론 '자유가 그립다' '나 다시 돌아가게 해줘'를 외칠 것이 명명백백합니다.
    안 그러면 제 손에 장을 지집니다.
    그러나 남은 한 브라더스의 객지분투기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지는군요.
    옹녀까지 나왔으면 갈 데까지는 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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