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사람들

시사 2019/10/04 09:35
어제 보수 야당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130만명을 동원한다더니
광화문에서 시청, 서울역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인파가 거리를 채웠다.
보수측 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자한당도 놀랐을 것 같다.

몇일 전(9월 28일)엔 서초동에서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집회가 있었다.
주최측은 10만명을 희망했으나
무려 150만, 혹은 200만명이 참여했다.
이들도 스스로 놀랐다.

어제 보수측의 대규모 집회는
서초동 집회에 자극받은 바 크다.
자한당은 서초 집회 참가자 숫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아무리 크게 잡아도 5만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그래놓고 오늘 자기들 집회 참가자는 300만명이란다.
300만이 맞다면 서초 집회도 200만은 되지 않을까?

서초 집회에 200만 인파가 몰렸을 때
검찰개혁을 바랐던 나도 놀랍고 반가웠다.
그러나 마냥 좋지는 않았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출과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조국 일가 죄질'이 과장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무죄라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은가?
유죄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수백만명이 몰려가 법적 기관을 욱박지르는 것은
또 다른 파쇼 아니겠는가?

2,3만명 돼도 좋았으련만....
너무 많은 숫자에 나는 되레 가슴이 무거웠다.
촛불혁명 때는 집단지성이라며 찬탄했지만
앞으로 사사건건 머릿수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 한다면
집단광기, 중우정치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어제 보수 집회를 보곤 웃음, 쓴웃음이 나왔다.
장관 하나 잡자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오나?
조국이 뭐관데, 저리 사생결단을 할까?
국가 운명은 나 몰라라, 무책임한 선동과 악담만 퍼붓는 것을 보며
참으로 암담했다.
저런 자들이 어찌 정권 대안세력이 될 수 있겠는가?

보수 지원, 아니 문 정권 타도 선봉에 선 조선일보 또한 딱하다.
내가 언론계 현역일 때 조선일보는 교활하면서도 대단했다.
그때도 편파 왜곡 과장을 일삼았지만
나름의 명분과 논리를 갖춰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욕을 하면서도 속으론 감탄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자한당과 한통속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수준도 자한당 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다.
파리 한마리만 봐도 악에 받힌 듯 도끼를 휘두른다.
그러다 보니 논조 또한 천박하다.
과거엔 마피아나 삼합회 보스 같은 포스가 있었으나
지금은 초딩이 푼돈 뜯는 양아치 같다.
어쩌다 저리 됐나, 안쓰럽다.

자한당과 보수세력은
이번 집회로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숫자에서 늘 진보진영에 밀리던 열등감을
통쾌하게 날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초집회와는 차이가 있다.
서초 집회가 자발적이었다면
광화문 집회는 동원 성격이 크다.
또 자한당과 뜻을 달리 하는 세력도 많이 참가했다.
자한당은 전국 지구당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참석 인증샷 제출을 지시했다.
태극기 부대와 극우 종교단체 등 이질적 세력도 대거 참여했다.
보수 라고 불릴 만한 모든 세력이 참가한 것이다.

그러나 동원된 사람만으론 300만 이라는 숫자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들 외에 정치색이 없는, 순수 시민도 대거 참여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자한당에 호의적이진 않지만 조국에 분노한 시민들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조국에 분노했다기 보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은 이 사회의 민낯에 분노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 정권에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으나
조국 사태가 벌어지면서 갈 길을 잃은 것 같다.
아직 문 정권을 반대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분노를 풀 길이 없자 조국을 희생양 삼아 이번 집회에 참가한 게 아닐까?

보수 집회에 수백만이 모였다는 건 심상치 않다.
그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면
어떻게 모였든, 속 내용이 어떻든, 혁명적 사태다.
절대로 쉽게 보면 안된다.
중요한 건 '길 잃은 사람들'의 최종 선택이다.

나는 정서적으로 조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야당의 격렬한 비난과 조롱에도
처연하게, 또는 의연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고
그가 좋아졌다.
이런 혼란과 갈등이 예측 가능했음에도
조국을 선택한 문 대통령에게도 되레 신뢰가 깊어졌다.

야당은, 또 일부 여권에서도 조국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조국 스스로 사퇴하거나 조국을 내치는 것.
이는 사실 쉬운 해결책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며 정치공학이다.
그 당연한 해법을 거절한 조국과 문재인이 나는 새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에 기대를 건 것이다.
새로운 세상은 이전과 다른 길을 걸어야 열리지 않겠는가?

나의 기대와 희망에도 불구하고
이번 싸움은 문재인의 패배로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조국 사건이 끝나면
여하튼 우리 나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것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리고,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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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영농일기 2019/09/24 19:10
이제 가을인가?
아침 저녁으론 제법 서늘하다.
풀들도 기세가 꺾였다.
예전엔 베어내기가 무섭게 일어서더니
일주일 전 베어낸 자리가 아직도 누렇다.
베어낸 풀이 마르도록 새 풀이 자라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올해 더 이상 풀을 깎는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러나 벌레들은 여전하다.
아직도 고추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처음엔 보이지도 않던 벌레들이
요즘들어 자주 눈에 띈다.
가을이 오면서 벌레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가,
아님 이제서야 내 눈에도 숨은 벌레가 보이는 건가?

처음엔 벌레를 보면 장갑부터 찾았다.
맨손으론 도저히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장갑을 찾아 오면 벌레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어디에 있었는지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번번히 놓치다 보니
나 자신에 화가 났다.
농사를 지으려는 거야 말려는 거야?
눈 딱 감고 맨 손가락으로 집어내기 시작했다.
그 흉칙한 색깔과 감촉에 진저리를 쳤지만
몇 번 해보니 할만 했다.
그러나 지금도 벌레를 잡으면 바로 손부터 씼으러 간다.
내년 쯤엔 벌레를 잡은 손 그대로
맛있게 밥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올 고추농사는 이미 끝난 것 같다.
아직도 많은 고추가 달려있고 무수히 꽃들이 피어나지만
이제 더 이상 열매가 붉어지진 않는단다.
그렇다면 고추가루는 80근으로 끝나는 건가?
600근 목표가 80근으로 끝나다니
허탈하고 창피하다.

올 농사에 실패한 건
초기에 고추나무 관리를 잘못한 것도 있지만
별레를 거의 못잡은 탓이 크다.
벌레들은 꽃이 필때 꽃 속으로 침입,
고추 속에서 고추와 함께 큰단다.
일단 들어가면 방제할 방법이 없단다.
그래서 꽃이 필 때 소독을 자주 하라고 한다.
꽃은 매일 수많은 꽃을 피우는데,
그럼 날마다 약을 쳐야 하나?
이건 아닌 것 같다.
날마다 친다 해도
약을 친 뒤 피어난 꽃들은 또 어쩔 것인가?

이 때문에 화학농약으로도
어느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보는 피해라면,
설사 좀 더 피해를 본다 해도 큰 차이만 아니면
무농약을 고집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해 차이기 크지 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내 경우, 반반 정도를 각오했지만
벌레가 3, 내가 2를 먹은 것같다.
그런데 용세 성님 고추밭은 너무나 깔끔하더라.
벌레 먹은 고추 하나 없이 아직도 싱싱하기만 하더라.
우리 밭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라.

그런가?
화학농약을 치면 이렇게 효과가 있는가?
그만큼 내 농약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님 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는가?

올 농사가 잘못된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 농사도 장담하기 어렵다.
600은 커녕 200근 넘기기도 쉽지 않다.
내년 농사 시작 전에
반드시 해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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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徨先生 2019/10/04 19:48 PERMALINKMODIFY/DELETE REPLY

    列子的歌!!

  2. 쥔장 2019/10/05 15:37 PERMALINKMODIFY/DELETE REPLY

    황룡선생, 어찌 이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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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수 없는 강

시사 2019/09/19 14:32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 갈등, 국민적 혼란이
두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문 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장관 임명을 결정했지만
야당은 오불관언, 삭발 단식 등으로 계속 맞서고 있다.

대체 조국이란 사람이 무엇이기에
온 나라가 이토록 그의 사임 여부에 매달려야 할까?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거느린 제1 야당 대표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일개 장관 하나 끝장 내자고 삭발을 할까?
하나 하나가 모두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어찌 줄줄이 눈물을 짜며 머리를 밀고 있을까?

만사 제치고 조국 사임에 목을 매는 야당이나
그런 조국을 끝내 지키려는 여당이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이 조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잘 한 일일까?
야당이 그리 반대하고, 여론도 좋지 않은데
꼭 그래야 했을까?

사실 어떤 쪽으로든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책임 없는 나도 선택하기 어려운데
국가는 물론 자신과 정당의 운명까지 고려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의도가 분명해지면서
문 재인도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격, 충격적으로 조 후보 수사에 나섰을 때
그 의도를 두고 많은 해석이 있었다.
조 후보를 희생양으로 야당의 대규모 숙청을 겨냥한다는 음모론도 있고
윤석열이나 검찰 모두 애초부터 검찰 개혁론자인 조국을 손보려 했다는 설도 있다.

윤 석열 총장은 보수 정권에 찍혀 시골에 쳐박혀 있다가
현정권에 의해 검찰의 핵인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전격 발탁됐다.
음모론이 나온 배경이다.
한편 윤석열은 '뼛속까지 검찰인 사람'이란 말을 듣는다.
박근혜 정부때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보수언론과 청와대에 의해 검찰총장이 축출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이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 황교안의 압력까지 폭로한다.
이에 대한 보수 의원들의 질타에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람이 아니면 그는 무엇에 충성했을까?
국민? 아니, 사람이 아니랬으니 국가?
나는 그러기를 바라지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그는 검찰총장 채동욱의 호위무사라는 말을 들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했으니
그가 호위한 것은 채동욱이 아니라
검찰총장, 즉 검찰 조직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에겐 문재인에게 은혜를 갚기보다
검찰 조직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젠 자신이 검찰의 상징, 충성의 대상이 되었으니
온 검찰이 한몸으로 조국 쳐내기에 나섰을 수 있다.

그의 진심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재인은 검찰의 조국 제거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면서
후자쪽에 기울어진게 아닐까 싶다.
'검찰 개혁'이란 자신의 소명을 위해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처음은 잘 한 선택인 것 처럼 보였다.
여당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고 약간이나마 높아졌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더 진행되면서
문재인의 지지도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조 장관 부인뿐 아니라 조 장관까지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단다.
문재인의 선택이 잘못된 션택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조국 임명 감행 뒤
왜 아댱의 특검 요구를 받지 않았느냐 이다.
특검은 검찰을 불신할 때 한다.
윤석열 검찰이 검찰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수사를 중단시키고 특검에 맡겨야 했다.
야당이 특검을 주장했으니 야당의 입을 막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여당으로서는 일거 양득이지 않았을까?

나는 윤석열 검찰의 전광석화 수사가
'조국 죽이기'가 아닌 신속한 '조국 갈등 끝내기'이길 기대했다.
아직도 그 기대를 놓고싶지 않다.
조 장관 하나 죽고 사는 게 무슨 대수인가?
원칙대로만 수사한다면
원칙대로 그 결과를 수용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여야 갈등, 국민적 혼란의 종식이다.

만일 그 결과 조 장관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조국을 쳐내면 된다.
그를 결코 용서해선 안된다.
이런 혼란을 불러온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위험을(의혹이 사실이라면) 자초했을까?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착각한 걸까?
만일 잘못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착각할 정보를 주었다면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잘못을 실토했는데도 그같은 결정을 했다면
문재인이 오판한 것이다.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야댱의 승리로 해석돼선 안 될 것이다.
이는 국가적 비극이다.
지금 야댱의 의식과 역량으로는
조국의 앞날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결정적인 흠집이 나오지 않는다면
검찰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개혁에 대한 명백한 저항이자 역사에 대한 반동이며
고질적인 검찰 적폐, 악폐가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농단 수사 때보다 더 많은 검찰 인력이
이번 사건에 투입됐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지방 검사까지 차출,수사에 투입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최강 수사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또, 이미 전격적이고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음에도
다시 이곳 저곳을 뒤지고 있다.

이는 캐면 캘수록 더 캘 것이 나오기 때문인가,
아님 캐고 캐도 나오는 것이 없기 때문인가?
사생결단, 죽기 살기 식의 검찰 수사 끝장을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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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느냐

한담 2019/09/14 10:42
4번째 고추를 따서 오늘 건조기에 넣었다.
수량이 지난번 4분의 1밖에 안된다.
본래 600근, 솔직히는 최소 400근(고추가루 기준)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까지 거둔 것이 고작 70근에 불과하다.
고추가 쓰러지면서 목표를 200근 정도로 낮췄지만
이렇게 심하게 벌레가 먹는다면
100근이나마 가능할까?

성한 고추 보기가 갈수록 쉽지 않다.
보이는 고추마다 모두 벌레가 먹었다.
흉한 몰골로 줄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교수형 집단 처형장처럼 처참하다.

용세 성님에게 어쩌면 좋으냐 물으니
화학농약을 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단다.
화학농약을 쳐도 결코 쉽지 않단다.
그러면서 나를 보는 눈빛이
"이제 알겠느냐?" 하는 것 같다.

유기농은 아무도 없는 산골에 들어가 혼자 짓든가
주변이 모두 함께 해야 가능하다더니,
혼자 아무리 애써도 안된다더니,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남보다 두배 세배 방제를 했는데도
밭이 온통 벌레 투성이인 것을 보면
나도 당장 갈아엎고 싶다.

그러나 갈아엎기엔 고추나무들이 너무 싱싱하다.
고추 열매만 피해를 입었지
가지와 잎들은 여전히 새록새록하고
아직도 꽃들이 무수히 피어난다.

끝까지 해보리라.
벌레들이 언제까지 번성하랴?
지들도 끝이 있겠지.
그때까지 우리 고추들이 버텨준다면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

어차피 올해도 실습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실망 말고
한해 더 배운다 생각하자.
내년엔 훨씬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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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일상 속에서 2019/09/14 10:04
어제가 추석.
남우가 내려왔다 갔다.
여전히 교통난이 지옥이고
요즘 젊은이들 명절에 별다른 의미도 두지 않아
남우가 내려오리라곤 생각 안했다.
왔으면 하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하지만 왔다.
그것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길이 막힌다고 그 먼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니.
그 엉뚱함에 웃음이 났다.
녀석, 늘 내 의표를 찌른다.

서울에 살 때도 왔던가?
생각해보니 왔던것 같다.
그러나 와서도 말 한 마디 없어
와도 온 것 같지 않고
늘 서먹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엔 말이 좀 늘었다.
마음을 활짝 연 것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조금은 털어놨다.
내가 술을 한 잔 하자 하면 늘 거절하더니
술도 같이 몇잔 나눴다.
이런 일도 있구나.
사람은 이렇게 변하는 거구나.
기분이 좋았다.

아내가 이사오면서
아이들에게도 이곳이 고향이 된 것 같다.
두희는 미리 다녀가고
남우는 명절이라고 교통지옥을 뚫고 이곳에 온 것이다.

고맙고 기특하고....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마음이 아렸다.

남우가 돌아간 뒤
도착했단 소식을 듣기까지 안절부절 했다.
오는 건 좋지만
오고 가기가 너무 힘드니 안쓰럽고 미안하다.
다음에 또 올 때는
기차 타고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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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영농일기 2019/09/07 09:45
밭에 갈 때마다 벌레 먹은 고추를 몇 바구니씩 딴다.
방제를 할 때마다 강도를 높여봤지만
약물이 신통찮은지 효과가 별로다.
게다가 요즘 비가 와서 그런지
우리 밭이 동네 날벌레 집합소가 됐다.
내가 발에 들어갈 때마다 수십, 수백마리의 나방이
시위하듯 일제히 날아오른다.
기가 막히고 무섭기도 하다.

벌레들, 참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성한 고추와 상한 고추가 반반이다.
아니 어쩌면 벌레 먹은 고추가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유기농을 고집하면서 벌레들과 나눠먹는단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먹고 남은 것을 벌레가 먹는 것이 아니라
벌레가 먹고 남은 것을 내가 수확하는 꼴이다.
그래도 병은 없으니(아직까진) 다행이다.

오늘 자닮오일을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밭에 벌레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나에게 있겠지?
천연농약을 내가 잘못 만든 탓이겠지?
이번엔 제대로 만들어야겠다.
2번 실패했으니 이번엔 정말 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안된다면?
유기농 소리,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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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노래와 사연/그냥 좋은 노래 2019/09/0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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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모처럼 올려다 본 하늘

어느 TV드라마의 OST로 나왔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요즘 양희은의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게 된다.

그런 막장 드라마에 이런 노래가 나오다니...
아내가 보는 바람에 욕을 하면서도 가끔 봤지만
이 노래가 나온다는 건 인터넷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 가슴에 젖어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그러나 인생의 쓴 맛을 조금씩 알아갈 때,
아마도 뜨거운 여름 어느 주말에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거실에 멍하게 누워있는데
어느 이웃집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방송의 소개에 따르면
양희은이 암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때 부른,
당시의 심정을 짙게 느끼게 하는 노래라고.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체념한 듯, 초월한 듯
담담하면서도 애절함이 묻어나는 이 노래는
참 묘하게도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배워서 블러보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아직 나는 승부욕이 넘쳤고
그에 걸맞게 거칠고 강한 록에 더 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웬일인가?
은근히, 더 진하게
이 노래가 다가온다.

도시를 떠나와 농사짓는 늙은이에게,
이제 울 일도, 잊어버려야 할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마음이 첩첩산중에 오를까?

나는 모든 걸 내려놓았는데,
내려 놓으려 하는데,
산은 또 왜 자꾸 내려가라 하는가?
내려가서 무얼 하란 것인가?

어느 곳에서도 삶은 편치 않고
나라는 어지럽고...

오늘도 홀로
한계령에 오른다.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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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사면초가

시사 2019/08/27 10:18
문재인 정부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문 정권 개혁의 아이콘인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에 내정되자마자
딸의 대학 부정입학설 등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일본은 우리 나라를 백색리스트에서 제외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목을 죄고 있다.
문 정부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 보호 협정) 중단 카드로 대응했지만
이는 일본은 물론 미국의 심각한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이를 기사회생의 기회로 삼고 있다.
여론을 무기로 정부와 조국 수석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진보언론들도 의혹 제기에 동참하고
젊은 세대의 분노가 확산되면서 지지율까지 부정적으로 반전,
문 정권은 정치 경제 외교 전 분야에서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지금의 위기가 정권의 위기 이전에 국가의 위기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미일 사이 경제 외교적 파열음은
문 정권이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동북아, 더 나아가 세계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난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문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 한다.
어느때보다 국민의 각성과 단결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관심은 조국 후보에만 쏠리고 있다.
특히 야당과 보수언론은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위기를 부르짖으면서도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기 보다
문 정권 끝장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과연 조국 후보의 거취가
경제와 외교문제보다 절박한가?
조국만 끝장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조국만 끝장낼 수 있다면
나라는 어떻게 돼도 괜찮은가?

내가 보기엔 온 나라가 집단 광기,
마녀, 아니 조국 사냥에 사로집힌 것 같다.
나도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유시민 처럼 이 사람도, 아마도 가벼운 그 입 때문에,
주는 것 없이 밉다.)
그의 잘못이 정말 이 정도일까?

국민들이 조국에 분노한 것은
그가 이른바 적폐세력과 다름없이
특권과 특혜를 누렸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입만 열면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이니
그만큼 배신감도 더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야당과 보수언론이 희희낙락할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당장은 모두가 분노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그러들 수도 있다.
그의 적폐라는 것이
과거 보수세력들의 적폐와는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를 용서하긴 어려울 것이다.
국민들의 배신감이 그 만큼 크다.
이미 상처를 받을대로 받은 그가
장관직을 수행하기도 쉽지 않다.
정권에 짐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를 보내기 아쉬운 것은
검찰개혁 때문이다.

제대로 된 나라로 가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게 검찰 개혁이다.
노련한 김대중은 개혁보다 타협했고,
순진한 노무현은 도전하다 쓰러졌다.
문재인은 두 사람에게 배워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을 진행해 왔다.
이제 그 마무리를 조국에게 맡기려는 상황이다.

나도 그가 마음엔 안 들지만
온갖 비판을 뻔뻔하게라도 받아내고
굳건히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다만 전격적으로 이뤄진 검찰 수사가 수상하다.
어쩌면 조국을 쳐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문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검찰개혁을 포기하지 말고
대안을 갖고 있기 바란다.

지소미아 또한
일본이 교역규제를 풀더라도
덥석 재개할 일이 아니다.
지소미아는 우리에겐 별로 이득이 없고
되레 위험만 가중시킬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돕는 길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도 국민이 알세라 숙덕숙덕 체결한 것 아닌가?
이런 지소미아 중단은 대한민국이 진정한 주권 국가로 가는 첫 걸음이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경제는 '일본의 가마우지'신세에서 벗어나고
군사 외교적으로도 줏대를 찾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종속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과거 북한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로 나라의 존엄을 지켰다.
G2 시대인 지금, 우리도 못할 것 없다.
미일 앞에서 빌빌거리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지 않은가?
더 이상 빌빌거릴 순 없지 않은가?
국민의 지지만 있다면
줄타기 외교, 못해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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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방래

한담 2019/08/22 13:35
어제 세번째 고추를 땄다.
첫번째는 20kg, 두번째는 70~80kg,
이번에도 70kg 안팎이 될 것 같다.

고추 70kg 따는 것도 만만치 않다.
고생한 아내가 저녁까지 준비하기 힘들 것 같아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읍내로 나가 횟집에서 먼저 술을 한잔 마시고 있는데
조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추부라고.
한번 온다더니 정말 온 것인가?
너무 반가웠다.
당장 합석을 하자고 했다.

조부장은 휴가 중인지 처와 함께 왔다.
제주에서 낚시로 직접 잡은 것이라며
아이스박스에 갈치를 담아왔다.
또 회까지 떠서 따로 가져와
갑자기 술상이 푸짐해졌다.

집에 함께 와서 술을 더 마신것 같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또 필름이 끊긴 것이다.
아내 눈치를 보니 그래도 실수는 안 한 것 같다.
그동안 술을 자주, 거의 매일 마셨지만
이렇게 취한 적이 별로 없는데
어젠 정말 기분이 좋았나보다.

조 부장은 (아니 이젠 조 대표다.
그는 인터넷 전문지를 운영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떠났다.
점심도 함께 하기로 했지만
내가 일이 있어 아내만 함께 했다.
술도 더 먹고 함께 재미있는 일도 해야 했는데....
몹시 섭섭하다.

헤어진지 오래고
사는 곳도 멀리 떨어졌건만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가?

나도 이렇게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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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창동 2019/08/25 17:56 PERMALINKMODIFY/DELETE REPLY

    ㅎㅎ

    오랫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집도 예쁘게 잘 꾸미고 사시는 모습을 보니 안심도 되고,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다시 뵙는 날까지 항상 화이팅입니다요. ^^

    고추도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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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

영농일기 2019/08/10 09:16
어제 건조기를 샀다.
뭐 건조할 게 있다고....
사나 마나 고민했는데
사고 나니 홀가분하다.

농사를 그만 두면 몰라도
내년에도 농사를 짓는다면
고추밖에 더 있을까?
그렇다면 건조기 마련을 미룰 이유가 없다.

또, 농촌에 살려면
건조기는 필수 인 것 같더라.
귀농 현장교육 때 가본 집 마다
건조기 없는 집이 별로 없었다.

건조기도 종류가 다양하다.
한일, 신일, 경동 등 대기업 제품도 있고
농기계 전문 중소기업에서 만든 것도 있다.
나는 무명 벤처기업 제품을 골랐다.
농사도 남들 하는대로 안해 애를 먹는데
건조기로 또 속 썩는 건 아닐까?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아내에게도 건조기는 매우 유용할 것 같다.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건조기를 자주 쓰던데,
이제 무얼, 언제, 얼마나 말리든
빵빵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건조기를 사는 것으로
결정해야 할 일이 두 개 줄었다.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것인가?
그렇다.
고추농사에 재도전할 것인가?
그러려 한다.

그러나 고추 농사를 지어도
올해처럼 올인하진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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